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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저항

  • 혐오 발화를 하는 이들도 나름 지식으로 무장한다. 19세기 서구에서 과학과 성경을 바탕으로 흑인과 여성 일반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었듯이, 오늘날 한국은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에게 그 화살을 겨냥한다. 적어도 무늬는 논리적으로, 이론적으로, 과학적으로 갖추고 나름 '합리적인 혐오'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19)
  • 이 책에서 말하는 반지성주의는 '알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상태'다. 혐오 발화자들은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을 모르기 위해 애를 쓴다. 모르지만 규정하려고 한다. (20)
  • 〈더러운 잠〉의 내용은 패러디 원본인 〈올랭피아〉와 아무 상관이 없다. 성, 인종, 종교 등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행동은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조롱과 혐오로 이어질 뿐, 권력을 향한 풍자가 되진 않는다. (51)
  • 표현의 자유는 어떤 창작물을 발표하거나 발언을 했다고 해서 개인이 부당하게 법적 처벌을 받거나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창작물이나 발언을 두고 비판할 때 자동적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방어막을 치는 태도는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표현의 자유가 비판받지 않을 권리는 아니다. (55)
  • 진보 정치인을 지켜주지 못하면 또 잃을 수 있다는 공포가 진보 정치를 갈망하는 이들의 뇌리에 새겨졌다. 지키는 대상이 '사람'이 되면서 팬덤 정치는 곧 정의가 된다. '우리 편'을 향한 믿음은 종교화되고 정치적 지향은 일종의 신앙심과 다름없어졌다. (76)
  • 모든 차별의 핵심은 개별성의 삭제다. (79)
  • 검찰에 출두한 최순실을 전하는 언론은 '아줌마' 패션에 몰두했다. 그의 벗겨진 신발 한 짝이 '프라다' 신발이고 손에 든 가방이 얼마짜리 명품이라는 사실은 보도될 가치가 없는 가십이다. (...) 지금까지 출두하는 남성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의 옷은 어느 브랜드이며 얼마인지 신속하게 정보를 배달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83)
  • 여성의 분노는 혐오로 번역되고 여성혐오는 정당한 분노로 번역된다. (140)
  • 젠더 문제를 두고는 '본능'을 옹호하며, 자연법칙을 내세울 때가 많다. 운동과 지성의 흐름을 거부한 채 '남성의 본능'에 갇혀 알기를 거부한다. (...) 본능을 옹호하는 이들은 여성의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원시'로 돌아가 무지를 선택한다. 앎보다는 권력 유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145)
  • '이해'는 언제나 약자의 몫으로 남는다. 성소수자는 이성애 사회를 이해해야 하며, 여성은 가부장제를 이해해야 하며, 장애인은 비장애인을 이해해야 한다. 반면 이해받는 이들은 조심할 필요 없는 권력을 휘두른다. (150)
  • 여성이 '김치녀'나 '된장녀'로 불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검열하며 '개념녀'가 되려 한 반면, 남성은 '한남충'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여성이남성을 명명하는 상황, 그 형식 자체가 남성에게는 문제로 다가온다. 어디 감히 여성이 남성을 호명하는가. 남성을 부르는 '년'는 '메갈'이 된다. (163)
  • 보수 우파가 특정 지역 혐오와 안보를 이용하고 페미니즘을 왜곡해 활용한다면, 진보 진영은 '민주와 진보'라는 대의를 위해 노동자와 여성을 '나중으로'미룬다. (169)
  • 혐오할 자유가 저항할 권리를 압도하는 순간 차별은 문화가 된다. (173)
  • 혐오 표현이 취향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상대가 선택할 수 없는 정체성을 조롱의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176)
  • 소수자를 멸시하며 축적한 저항의 에너지 속에는 혐오와 차별이 기생한다. (191)
  • 사회의 야만은 약자 멸시에 담겨 있다. 지성은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향해 치밀한 관심을 동반해야 한다. (196)

타락한 저항/이라영/교유서가 20190402 200쪽 13,000원

블랙리스트 사건, 나꼼수 현상과 메갈리아를 통해 본 혐오와 표현의 자유에 관해 던지는 화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만큼 생각은 더 넓어진다.


덧. 오타(?)
102쪽 마지막 행 우려한다 '실사구시'라고 → 우려하며 '실사구시'라고 혹은 우려한다. '실사구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