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트랙

Africa Trek, 2008
  • 2001년 1월 1일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 걸어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순간이 이제 곧 시작될 것이다. (15)
  • 결국, 8킬로그램의 배낭 두 개에는 1.5리터의 플라스틱 물병 하나, 3.5킬로그램의 장비(카메라, 카세트, 배터리, 이메일을 수신할 수 있는 전화기), 5백그램의 슬리핑 백, 작은 돗자리, 각자에게 필요한 티셔츠와 잠옷바지, 팬티 두 장, 갈아 신을 신발 한 켤레가 채워졌다. 이것이 전부였다. 이조차도 많았다. (25)
  • 우리는 똑같은 거리를 걸었지만, 걷는 방식은 서로 달랐다. 보잘것없는 수컷인 내게 걷기란, 걸음의 수확이자, 킬로미터의 정복이고, 공간에 대한 승리였다. 환상과 허영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녀에게 도보여행은 우리의 인생을 완성하는 일이요, 우리의 운명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단순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이해했고, 난 배워가는 중이었다. (78)
  • "왜 여행을 하시죠?" 소냐가 재치있데 대답했다. "두 분을 만나려고요!" (128)
  • 어쩌면 폴 모랑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일정 고도를 넘으면 인간은 나쁜 생각을 품지 못한다"는 말. (132)
  • 피부 아래 속살은 누구나 예외없이 빨갛잖아요. (188)
  • 보마는 강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요. 운 좋게도 녀석이 우리를 봐주는군요. 녀석이 우리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저 녀석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217)
  • 여행을 계속해 나갈수록 사람들을 만나려면 걸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걷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42)
  •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투표용지입니다. (298)
  • 우리의 다리는 자만심이나 의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인들의 순박하고도 자연스런 환대 덕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들 집에 우리는 매일 지치고 목마른 상태가 되어 도착한다. 그들이 없다면, 이 겸허한 연대의 끈이 없다면 우리는 단 이틀도 걷지 못했을 것이다. 재정적 지원? 우리에게 그런 건 없다. 구세주는? 하루에 적어도 한 명은 있다. 누구보다 검소하고 누구보다 가난하지만 마음만큼은 부유한 아프리카 농부가 친히 나섰다. 이것이 우리의 생존이다. 이것이 우리 일상의 몫이다. 이것이 우리의 보물이다. (336)
  • 질투가 아프리카의 문제입니다. 고개를 조금이라도 내미는 사람이 있으면 가차 없이 줄을 맞추게 하죠. (427)
  • 제 생각에는 세 개의 큰 결함이 아프리카가 날아오르는 걸 막고 있습니다. 전통의 무기력함, 이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두뇌들의 유출, 그리고 정부의 부재입니다. (450)
  • 킬리만자로, 그토록 꿈꾸어온 곳! 우리 도보여행의 중간지점이자 절정이었다. (...)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절반 정도가 고산병 등의 문제로 정상에 이르지 못한 채 서둘러 내려간다는 사실과 (...) 실패율은 운동으로 단련된 젊은이들에게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40세 이상에서는 현저히 감소했다. (550)
  • 여행 532일째, 6975킬로미터 (559)

아프리카 트렉Africa Trek, 2008/알렉상드르 푸생Alexandre Poussin, 소냐 푸생Sonia Poussin/백선희 역/푸르메 20090522 22,000원

걷기의 달인도 아닌 평범한 신혼부부가 걸어서 아프리카를 관통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희망봉에서 출발해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까지 3년 3개월에 걸쳐 두 발로 걸은 대장정의 절반에 해당되는 킬리만자로에 이르기까지 7,000킬로미터의 기록이다.

시간과 거리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모든 후원을 거부하고 걸으며 만난 아프리카 사람들과 인류의 발자취에 대해 이야기한다. 흑백 갈등, 에이즈, 물 부족, 내전을 겪으며 살아가는 아프리카지만 저물녘이면 그들을 따듯하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도보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먹을 거라곤 마실 물만 가지고 걸었던 저자에게 아프리카는 사람 사는 정으로 그들을 맞아주었고, 다음 날 먹을 끼니까지 챙겨 주어서 두 사람의 아프리카 걷기를 마칠 수 있었다.

저자는 "우리를 초대해서 따뜻하게 맞아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도와주고, 아프리카 대륙의 경이로운 면면들과 인간적인 풍요로움을 보여준 아프리카 사람들께 이 책을 바친다"고 했다. 물론 야영을 하며 사자의 습격을 받기도 했고, 목숨을 노리는 강도도 있었지만 아프리카가 보여준 무한한 연민의 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것이 신혼부부가 생존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이었다.

저자인 신혼부부가 걸을 때 자동차를 태워주겠다는 호의를 보이면 걸어서만 가야 한다며 완곡히 거절하곤 했다. 그들이 계획한 여정에서 벗어나 차를 타게 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걸으며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킨다. 적도일주를 한 마이크 혼도 같은 행동을 보였는데 이렇게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여행가를 만드는 것인가 보다.

3년의 여행 동안 이들이 걸으며 만난 아프리카인들이 1,200여 가족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을 만나며 아프리카 대륙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또 그들에게서 경이로움과 아프리카 대륙만의 풍요로움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고원지대로 올라가면서 일정 고도가 넘으면 인간은 악해질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곤 한다.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을 보면 소냐는 항상 치마를 입고 걸었다.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바람이 통해 시원하다고 답하는가 하면 GPS도 없이 지도와 만보기에 나온 숫자를 가지고 몇 킬로미터를 걸었는지 계산을 한다. 그렇게 걸어서 가는 신혼부부를 본 원주민들의 공통된 말은 정신 나갔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생존과 직결되는 아프리카 걷기 여행은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정신 나간 일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소냐와 나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매일같이 하고 있는 걷기 외엔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 보면 아프리카를 걸어서 여행한 저자와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아프리카인들이 정신이 나간 것인지 아니면 편안하게 여행기를 읽고 있는 내가 정신이 나간 것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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