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야! 고마워

문지라고 있습니다. 원래 이름이 있지만 그냥 문지라고 부르겠습니다.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제가 먼저 말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싫지 않았는지 둘만 볼 수 있는 편지(?)를 보내는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비밀 편지를 주고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문지가 제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아, 물론 제게만 보낸 건 아니랍니다. 내게만 보내면 티가 나니까 그걸 숨기려고 여러 명에게 보냈을 겁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선물이 도착한 날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어린이날 하루 전에 도착을 했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어린이날 선물을 받는 어른은 없거든요. 문지는 내가 성인인 걸 눈치채고 있을 텐데 어린이날에 맞춰 선물을 보냈던 거지요.

덕분에 어린이가 됐답니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나이지만 마음은 모처럼 하얀 백지 같은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새 신을 신고 폴짝 뛰어보던 그 시절로 말이죠. 그런 기분을 느끼라며 보냈던 거지요.

선물은 새로 나온 책이었습니다. 이설(異說) 김이설 작가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단편을 모아놓은 소설집입니다. 포장을 뜯자마자 작가의 말을 훑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작가의 고향이 예산이라는 소개를 보고 그곳에서 한우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답니다. 참 주책없습니다.

아차. 뜬금없이 책을 선물로 보내줬는지를 얘기하지 않았네요. 지난 책의 날에 문지가 내게 물었습니다. 마음 한 켠에 남아 잊지 못하는 시가 무엇이냐고요. 저는 퍼뜩 떠오르는 시가 있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였습니다. 그 시를 만나기 전까지는 첫눈이 내리는 이유를 몰랐었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며 사랑하는 이들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합니다. 문지에게 이 시를 말해주자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책을 선물 받게 됐던 겁니다.

그깟 책 한 권 받고 무슨 사설이 이리 기냐고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저 같은 피박인생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랍니다. 더군다나 책을 받은 날이 어린이날 하루 전이었으니 그 기분이 설상가상이었습니다. 아차차. 설상가상이 아니고 금상첨화였습니다.

아무튼 문지 때문에 아주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어린이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길어서 내 맘대로 줄여 불렀는데 맘 상하지는 않았겠지요. 문지의 원래 이름인 문학과지성사라고 부르면 B사감이 연상돼서 그렇습니다. 그냥 내 맘대로 문지라고 부르며 소녀시대를 그리렵니다. 아무튼 문지야, 덕분에 기쁘고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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