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요즘 이렇게 낄낄댄 적이 없습니다. 그것도 여자가 축구하는 얘기를 읽으면서 말이죠. 그도 그럴 것이 선수층이 '59년간 만두만 빚은 중국 장인의 만두피처럼 얇디얇'다거나 '축구공을 앞으로 뻥 찰 줄 아는 선수만 해도 32년간 국수만 뽑은 국수 장인만큼이나 귀하(218)'다고 하니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초자연주의자인 지은이가 '아저씨 냄새(33)' 나는 축구팀에 들어가 축구하는 이야기는 우아하고 호쾌할수록 맨스플레인(mansplain)이 가득합니다. 오죽하면 축구 팬이라는 걸 밝히는 순간부터 '귀찮아지거나 불쾌해지(45)'는 경우가 생기겠어요. 더군다나 여자가 축구를 한다니. '여자가 취미로 축구하는 이야기는 그 유명한 남자가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의 정반대편에 서 있(30)'기 때문이겠지요. '기울어진 축구장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여정(270)'입니다.

'축구를 잘하고 싶다라는 중요한 목표를 받쳐 줄 '축구를 잘할 수 있는 몸'에 대한 욕망이 무럭무럭 자라 기존의 욕망들을 압도(155)'합니다. 그러다 '핏 좋은 몸매만 그렇게 좋아하다가 좋은 핏으로 수의를 입으면 뭐하나 싶'어 '다 핏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154)'며 종아리에 알을 만듭니다. '편견의 가짓수를 줄여 나가는 싸움(272)'을 피치에서 시작합니다.

축구를 해 봤다면 스로인(throw-in)도 쉽지 않다는 걸 압니다. '멀리 던지려고 하면 자꾸 땅에서 한쪽 발이 떨어지고, 발에 신경을 쓰면 자꾸 공을 이마 앞쪽까지 가져와서 던지게(185)' 됩니다. 뭐든 그렇지만 축구도 쉬운 게 하나도 없습니다. 시물레이션 액션을 '시인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다친다면, 축구 선수는 스치는 옷깃에도 고통스럽게 나동그라지(112)'는 시늉레이션 액션이라고 하는 해석은 귀여움을 넘어 재치가 넘칩니다. 데뷔 첫 골이 자책골이라서 아쉬웠습니다. 동네 축구에선 뻥 축구가 최고라는 감독님의 작전은 탁월했습니다.

'일 나가고 아이 돌보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어떻게든 일상에 축구를 밀어 넣(270)'으며 취미로 하는 축구 얘기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어쩌다 축구를 하게 된 사연만큼 이제는 9분의 1쯤이 아니라 운동장을 통째로 쓰며 축구를 하고 싶은 여자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넓은 운동장 곳곳에 더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새겨지기(9)'를 바랍니다.

'제 시간의 60%는 직장에 묶여 있지만 제 기쁨의 60%는 축구에서 나온다'는 인터뷰를 봤습니다. 기절할 정도로 좋아하는 축구를 어떤 이유로도 쉬지 않고 계속하길 응원합니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김혼비/민음사 20180608 280쪽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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