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어디부터 좋은 사람이고 어디까지 나쁜 사람일까요. 정해진 검사법은 없지만, 법을 기준으로 따지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밤늦은 시간에 전봇대 옆에 노상방뇨를 하면 위법이지만 그 영향력은 미미합니다. 용서할만한 일입니다. 이런 행위도 행위자의 권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행위자의 권력이 높아질수록 영향력이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박원순 시장이 성희롱 의혹을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성희롱 개념을 국내에 확산시킨 변호사가 성희롱 의혹으로 고인이 돼서 불편합니다. 고인이 좋은 사람을 넘어 위대한 사람이 되길 바랬지만 끝이 안 좋다고 다 안 좋은 것으로 끝나는 일도 없었으면 합니다.

의혹을 밝힐 순 없겠지만, 구조적 문제는 진상조사로 드러내고 고쳐야 합니다. 왜 이제 와서 폭로하느냐고 다그치지 마세요. 위계와 위력은 피해자들을 대항할 수 없게 만듭니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혐오가 되어 2차 가해를 당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면 안 됩니다.

지지자는 무고라 주장하지만, 죽었다고 무죄는 아닙니다. 권력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나게 합니다. 억눌렀거나 숨겼거나 아니면 새로 만든 영향력이 권력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드러납니다. 이 경우는 나쁜 영향력입니다. 박원순의 선택은 스스로 자신을 유죄라고 말하는 방식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나는 이 말이 정확하게 이 사건을 대변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피해자 변호인의 과거 이력이나 대응 방법이 맘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고인은 되살아날 수 없고 피해자는 심리적 파국을 강요당하며 존재 자체를 삭제당하니까 그렇습니다. 2차 가해자에게는 응징을, 피해자에게는 응원을 보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