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누구인가? 전태일(全泰壹).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재단사라는 이름의 청년노동자.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나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스물둘의 젊음으로 몸을 불살라 죽었다. 그의 죽음을 사람들은 '인간 선언'이라고 부른다. (19)
  • 한 달 월급은 1천5백 원이었다. 하루에 하숙비가 1백20원인데 일당 50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다니기로 결심을 하고, 모자라는 돈은 아침 일찍 여관에서 손님들의 구두를 닦고 밤에는 껌과 휴지를 팔아 보충해야 했다. (100)
  • 노동시간은, 작업량이 비교적 많은 기간(가을, 겨울, 봄)은 보통 아침 8시 반 출근에 밤 11시 퇴근으로 하루 평균 14~15시간이었다. 일거리가 밀릴 때에는 물론 야간작업을 하는 일도 허다하며, 심한 경우는 사흘씩 연거푸 밤낮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 업주들이 어린 시다들에게 잠 안 오는 약을 먹이거나 주사를 놓아가며 밤일을 시키는 것도 이런 때이다. (108)
  • 우리는 당당하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살 권리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태껏 기계 취급을 받으며 업주들에게 부당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바보처럼 찍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 재단사들의 모임은 바보들의 모임이다. 이것을 우리가 철저하게 깨달아야 하며 그래야만 언젠가는 우리도 바보 신세를 면할 수 있다. (...) 우리가 한번 바보답게 되든 안되든 들이박아나 보고 죽자. (161)
  • 종업원 대부분이 여자로서 평균 연령 19~20세 정도가 미싱을 하는 사람들이고, 14~18세가 시다를 하는 사람들일세. 보통 아침 출근은 8시 반 정도. 퇴근은 오후 10시부터 11시 반 사이일세. (197)
  • 업주들은 한 끼 점심값에 2백 원을 쓰면서 어린 직공들은 하루 세 끼 밥값이 50원, 이건 인간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214)
  • 전태일에게는 참으로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나라였다. 약한 자도, 강한 자도,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도, 귀한 자도, 천한 자도, 모든 구별이 없는 평등한 인간들의 '서로간의 사랑'이라는 참된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는 세상, '덩어리가 없기 때문에 부스러기가 존재할 수 없는' 사회, '서로가 다 용해되어 있는 상태', 그것을 바랐다. (281)
  • 근로기준법이 있어서 노동자들이 살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참상은 더욱더 숨겨지고 전태일의 가슴은 더욱 분노로 터졌던 것이다. (290)
  • 1970년 22세. 11월 13일. 오후 2시경 석유를 온몸에 끼얹고 나타난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책을 손에 쥔 채로 몸에 불을 당겼다. 불길에 휩싸여 거리로 뛰쳐나온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외침과 함께 근로기준법의 화형식을 집행하였다. (320)
전태일 평전/조영래/돌베개 20010901 320쪽 9,000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렇게 외치며 전태일은 분신 항거했다. 1970년 11월 13일이었다.

전태일은 앞서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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