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선량한 차별주의자
  •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 덕분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나서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차별은 분명 양쪽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에게 부정의함에도, 희한하게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된다. (7)
  •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차별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11)
  • 차별이 없다는 생각은 어쩌면 내가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는 간절한 희망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차별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높다. (26)
  •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학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특권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발견'인 이유가 있다. 일상적으로 누리는 특권은 대개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서 많은 경우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권은 말하자면 '가진 자의 여유'로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다. (28)
  •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29)
  • 사람들이 부정의를 의식하는 때는 기존에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상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변할 때이다. 만일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지고 있어 현 체제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평등으로의 진보가 그냥 달갑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옳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34)
  • 기존에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평등해지는 것이 손실로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다. (...) 평등을 총량이 정해진 권리에 대한 경쟁이라고 여긴다면, 누군가의 평등이 나의 불평등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35)
  • 당신은 차별이 보이는가? 구조적 차별은 우리의 감각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인식하기 어렵다. 노예제 시대에는 노예를 자연스럽게 여겼고,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는 시대에는 그것이 당연해 보였다. (78)
  •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 판단하는 유용한 방법으로 존 롤스가 말하는 '무지의 장막"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가난한지 부자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능력이나 재능이 어는 수준인지 등 어떤 조건에 처해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가정하고 사회질서를 정할 때, 개인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모두에게 정의로운 규칙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채용기준에서 토익 점수의 경우, 자신이 청각장애인인지 아니지 모르는 상태라면 당신은 어떤 규칙을 채택하겠는가? (108)
  • 권력을 가진 사람이 사용하는 싫다는 표현은 (...) 단순한 개인 취향이 아니며 권력관계의 변동도 아니다. 바로 권력 그 자체이다. 무수한 차별이 싫다는 감정에서 나오고, 그 감정이 누군가의 기회와 자원을 배제할 수 있는 권력으로 작동한다. 주류 집단이 누군가를 싫다고 지목함으로써 '낯선 것'을 솎아내는 판옵틱(panoptic)한 감시체제가 작동을 시작하고 공공의 공간을 통치한다. (142)
  •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는 영토 안에 권리가 적거나 없는 계층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민주주의에 반하는 "폭정"(tyranny)이라고 말한다. (151)
  • 불평등한 사회가 고단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도록 부당하게 종요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차별을 당하는 개인에게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불안하다. (187)
  • 내가 모르고 한 차별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랐다" "네가 예민하다"는 방어보다는, 더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들을 감지하고 싸울 수 있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요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 (189)
  •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란'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어떤 차별을 금지해야 할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이 성소수자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이 분명하므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이주민, 무슬림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면, 인종, 민족, 피부색, 출신 국가, 종교 등으로 인한 차별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므로 그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 (198)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창비 20190717 244쪽 15,000원

이주민을 향해 "한국인이 다 되었네요", 장애인을 향해 "희망을 가지세요"라는 말이 차별인 줄 미처 몰랐다. 이주민은 한국에 오래 살아도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렸고, 장애인은 현재의 삶에 희망이 없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차별이었다. 나도 선량한 차별주의자이다.

차별금지법 역설은 어떤 차별을 금지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무엇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면 그것이 그대로 차별이 분명하므로 그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충고한다.

평등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평등은 인간 조직이 정의의 원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 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 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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