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고, 자기파멸적인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난 2~3세기 동안 이른바 문명세계가 산업문명을 통해서 이룩했다고 하는 높은 수준은 실은 인간사회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끊임없이 찢고 할퀴는 난폭한 짓을 되풀이함으로써 얻어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7)
  • 광산이 근대적 산업노동의 원형이라면, 근대화된 노동이란 본질적으로 강제노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떠한 정신적 고양도 심미적 쾌락도 따르지 않는 괴롭고 지겨운 노역일 뿐이다. (17)
  • 실제로, 경제발전은 민중의 '빈곤'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의 근대화'를 초래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 자본주의시스템은 원래 '빈곤'을 제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24)
  • 광우병 문제에 관련해서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이것이 실은 '미친 소'의 문제가 아니라 '미친 인간'의 문제라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이것은 탐욕 때문에 제정신을 잃고 자연의 순리를 간단히 무시해온 인간들의 문제이지, 아무 죄 없이 비좁은 우리에 갇혀 끝없이 학대받아온 소들의 문제일 수 없는 것이다. (36)
  • 오늘날 1인분의 쇠고기 생산을 위해서 20인분의 곡물이 투입되고 있고, 1칼로리의 쇠고기를 생산하는 데 보통 35칼로리의 석유가 소모되고 있다. 그 결과는 전 세계적으로 10억의 비만 인구와 10억의 기아 인구의 공존이라는 비극적 현실이다. (39)
  • 전진한 선생은 (...) 자본가가 돈을 출자했다면 노동자는 자기의 '노력'을 출자한 또 하나의 '자본가'라고 선언합니다. 노동자도 출자자라는 거죠. 출자자와 출자자는 기본적으로 대등한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생기는 이익을 고르게 나누는 것, 즉 균점(均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당한 권리다, 이런 논리죠. '노동자=임금노예'라는 진부한 공식이 이 명쾌한 논리로 단번에 척결돼 버린 거죠. (68)
  • 표준말이라 것은 위계질서가 전제되어 있는 권력언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 근대는 표준말을 확립하고 유지해온 시대라고 할 수 있죠. 근대 이전에는 표준말이 없었죠. 문법도, 사전도 없었고요. (...) 표준말이 성립되면 방언 쓰는 사람들은 졸지에 모두 세계의 변두리로 밀려나게 됩니다. (95)
  • 일리치의 관점에서 볼 때, 근대란 한마디로 가장 인간적인 가치가 제도화된(institutionalized)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0)
  • 희망이란 '자연의 선량함'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에서 우러나옵니다. 반면에 기대는 인위적으로 계획하고, 통제한 것에 따른 결과에 대한 의존을 말합니다. (108)
  • 권력의 중심에서 보면 권력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변두리이고, 근대 자본주의 문명이란 결국 권력의 중심에 의한 변두리에 대한 강탈의 역사임이 확실합니다. (192)
  • 종래에 우리가 '일'이라고 불러왔던 것은 모두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받는 일이었음에 반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면서도 돈으로 그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일(예컨대 아기와 노인, 환자와 장애자를 돌보는 일, 가사노동 혹은 '그림자 노동'이라고 불리는 모든 일, 비상업적인 다양한 문예활동 등등)은 '일'의 범주에서 제외되어왔다는 사실이다. 만약에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이처럼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중요한 일들이 떳떳한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212)
  • 고대 이래 전통적으로 사회의 지배계급 혹은 귀족계층이 누려온 '여가'는 기본적으로 그들의 억압적인 지배하에 있었던 하층민의 노동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이 기본적인 사실을 은폐하고자 지배세력이 꾸며낸 허구적인 아이디어가 '노동의 신성함' 혹은 '노동의 존엄성'이었고, 그것을 기초로 '노동윤리'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212)
  • 기본소득은 결코 복지혜택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들 개인에게 의무적으로 주어야 하는 일종의 '배당금'입니다. 마치 기업이 결산을 한 뒤에 주주들에게 배당을 주는 것처럼 말이죠. 왜 배당금이냐 하면, 더글러스에 의하면, 한 나라의 부는 일차적으로는 기업과 개인들의 창의적인 노력의 총화지만, 그런 부가 창출될 수 있는 근원적인 바탕은 그 나라 혹은 공동체 전체의 문화적 공통유산이고, 따라서 그 문화의 상속자인 구성원 전원에게는 공통체의 부를 나누어 가질 당연한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27)
  • 자본주의 근대문명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문명입니다. (...) 문명이라는 것은 에너지 없이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에 자본주의 문명은 거의 전적으로 석탄·석유 에너지에 의존해왔습니다. (258)
  • 앞으로는 사람은 일을 해야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자유롭게 생을 영위할 권리와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새로운 세상이 요구하는 사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272)
  • 기본소득을 '시민배당금'으로 정의하는 거죠. '배당금'이라고 하면, 수급자를 선별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습니다. (...) 기본소득도 한 사회, 한 공동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주주'로 간주하는 토대 위에서 시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게 논리적으로 더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73)
  • 근대세계의 출현과 함께 민중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공유지'의 상실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얘기가 되니까요. 자본주의 근대문명은 한마디로 민중의 삶의 터전인 공유지를 해체·파괴하는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76)
  • 전력이 부족해도 인간다운 삶은 언제든지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핵분열에 의한 환경파괴는 삶의 종식을 의미한다. 핵발전소를 없애면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지나치게 한가로운, 우둔한 물음이다. 대안이 있든 없든 핵발전은 시급히 중지해야 한다. (366)
  • 원자력 문제를 포함해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이런 식으로 시민들에 의한 숙려와 토의 과정을 통해서 풀어나가야만 진실로 좋은 사회가 됩니다. 강압적인 권력 행사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 그러므로 탈핵운동은 근본적으로 민주화운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430)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김종철/녹색평론사 20190620 432쪽 20,000원

김종철 선생(19470110~20200625)이 살아계실 때 간행된 마지막 책이다. 때로는 시간이 흐른뒤 오래된 미래를 언급한 글을 발견한다. 낡은 관념, 익숙한 관행과 직선적인 진보의 방향전환이 절실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가 별생각 없이 당연하게 수용해왔던 삶의 관행, 즉 '서구식 근대'의 논리에 따른 산업경제와 그것에 의존한 문명을 근원적인 각도에서 의심해보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사상적 토대를 구축하고 넓히는 데 기여하려는" 화두이자 담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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