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The Voice of the Infinite in the Small, 2002
  • 곤충에 대한 현대의 태도는 인류가 대자연을 더 이상 신성시하지 않고 기계적인 세계관을 받아들였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집단적 결정은 최근 여러 각도에서 재평가되고 있는데, 어쨌든 그 당시 인류는 과학기술을 신봉하기 시작했고, 기이하거나 불가사의한 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을 아예 절대적 신념으로 삼았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기이하거나 불가사의한 것에는 악의까지 있다고 믿게 되었다. 따라서 기이하게 생긴 곤충을 보면 의심을 품고 자기방어를 위해 무장하려드는 우리의 반응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31)
  • 모든 곤충을 익충 아니면 해충으로 구분해놓고, "이 곤충은 어떻게 유익한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 곤충을 바라보는 눈이 되고, 해충으로 판명된 곤충은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보는 즉시 죽임을 당하는 표적이 된다. (39)
  • "좋은 벌레는 죽은 벌레밖에 없다"고 선전하는 조직의 가르침만 따른다면,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낸 곤충 유령과 싸우는 데 진을 뺄 것이다. 곤충과의 전쟁이 35억 달러에 이를 거대 산업이 되어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44)
  • 파리의 역할 중에 하나가 가루받이, 곧 꽃가루를 옮기는 일이다. 그 밖에도 파리는 죽은 동식물이 잘 썩게 해주고 많은 생물의 먹이가 된다. 파리는 또한 여러 곤충을 잡아먹는데, 파리가 없으면 이런 곤충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동물과 식물의 균형을 깨트리게 될 것이다. (84)
  • 구더기는 대개 쓰레기, 똥, 동물 시체 같이 죽은 것이나 단백질이 풍부한 것을 먹는데, 인간을 포함한 살아 있는 동물의 방치된 상처나 죽은 표피도 구더기에게는 좋은 먹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추잡한 식성 때문에 구더기를 혐오하지만, 썩은 살이나 오물을 효율적으로 분해하고 순환시키는 바로 그 식성 때문에 구더기가 중요한 것이다. 사실 구더기가 이러한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온갖 썩은 오물의 악취에 질식해 장미 향기는 맡지도 못할 것이다. (84)
  • 거대한 하나됨 속에는 모든 것이 존재의 이유가 있어요. 괴물이나 돌연변이나 우연 따위는 없답니다. 단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지요. (103)
  • 바퀴벌레 하면 연상되는 오물(따지고 보면 다 우리가 배출하는 오물이지만) 때문에 우리는 이 무해한 곤충이 물지도 쏘지도 않고 인간에게 직접 해를 입히지도 않는다는 사시를 간과하게 된다. 생물학자 로날드 루드의 주장에 따르면, 바퀴벌레는 해충이 아니며 우리를 해칠 만한 균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121)
  • 개미의 수는 어림잡아 천 조 가까이 된다고 한다. (152)
  • 개미는 극한 지방을 제외한 지구의 모든 곳에 살고 있으며, 그 수도 인간보다 월등히 많다. 뿐만 아니라 토양의 영양소를 순환시키고, 식물의 가루받이를 돕고, 작은 생물을 사냥하고, 작은 동물의 시체 중 90퍼센트를 먹어 치운다. 개미가 없다면 지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개미가 사라지면 우리는 곤경에 빠지게 되고,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현재의 생물 멸종 상태가 훨씬 가속화될 것이다. 인간이 사라지면 반대 현상이 일어날 테지만. (152)
  • 개미의 성격에는 순전한 이기심이 없는 듯하다. 개미는 일생을 오로지 이타적인 목적에만 종사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개미가 인간보다 사회적 진화 차원에서 더 고등한 종이라고 믿는다. 과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더 나아가 개미가 윤리적 차원이나 경제적 차원에서도 인간보다 더 앞서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170)
  • 딱정벌레는 곤충 종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동물 종의 80퍼센트에 이르기 때문이다. (182)
  • 작물의 성장기에 곤충이 떼지어 나타나면 우리는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로 보지 못하고 곤충 자체를 문제로 여긴다. 농업 전문가들은 균형잡힌 환경에서는 허약하거나 죽어가는 식물만 곤충의 공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입증해왔다. 이는 유기농법을 탄생시킨 과학적 원리이기도 하다. 곤충은 땅이 척박해져 작물의 생명력이 떨어질 때 나타난다. 따라서 곤충이나 질병은 흉작의 원인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증세다. (187)
  • 환경이 살충제에 찌들게 된 것도 벌의 건강 약화에 한몫을 했고, 대개의 경우 야생벌과 양식벌 둘 다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유전자조작 작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유채씨 기름을 얻기 위해 재배하는 식물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생긴 바실러스 살충 물질이 목표물이었던 애벌레와 딱정벌레뿐만 아니라 벌까지 죽였다는 사실은 일찍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새로운 바실러스 면화 잡종과 접촉한 벌의 30퍼센트가 그 같은 비운을 맞았다. (231)
  • 다른 날벌레와 마찬가지로 모기도 화분 매개 역할을 한다. 북극지방의 습지에서 자라는 난초는 씨를 퍼트리기 위해 전적으로 모기에 의존한다. (...) 식물마다 열 종에서 많게는 서른 종의 동물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식물의 수분을 돕는 곤충을 제거하면 식물뿐만 아니라 식물에 의존하는 수많은 곤충과 동물들까지 모두 멸종 위기에 처한다. (252)
  • 환경에 매우 민감한 나비는 기후 변화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생물 중의 하나다. 사실 나비는 유충이나 성충 모두 서식지를 까다롭게 고르기 때문에 나비가 살고 있는 지역의 생태계는 아직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06)
  • 곤충은 천사와 마찬가지로 놀라운 능력이 있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 수 있고, 자연세계의 모든 요소를 자기 것으로 취한다. 변신과 성장의 모델로서 끊임없이 번식하고 위장한다. 또한 우리에게 울타리 밖의 정보를 전하는 전령으로서 새로운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 그것이 천사의 본분이다. (350)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The Voice of the Infinite in the Small, 2002/조안 엘리자베스 록Joanne Elizabeth Lauck/조응주 역/민들레 20040601 376쪽 12,000원

하찮다 못해 혐오하는 벌레(파리, 바퀴벌레, 개미, 딱정벌레, 벌, 모기, 거미, 나비, 사마귀)를 인간의 관점에서만 바라본 편견을 바로 잡는다. 지구 입장에서 보면 '해충'은 없다. 해충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곤충과의 교감이나 정령에 관한 부분은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이 또한 내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 팔뚝을 모기에게 내어줄 용기는 아직 생기지 않았다.

옮긴이의 말을 옮긴다. "이 책을 읽으면 곤충을 좋아하던 사람은 더 좋아하고, 곤충에 무관심하던 사람은 관심을 갖게 되고, 곤충을 혐오하던 사람은 혐오가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곤충을 무서워하던 사람은 그 공포에서 자유로워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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