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은 살아 있다

전태일은 살아 있다
전태일 열사의 사진이 든 액자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공광규의 시) 왜 그랬을까? 그는 왜 이름뿐인 존재가 되었을까? 그동안 그의 이름 아래에서 무슨 짓들 하고 있었던 걸까? 그는 더 이상 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영광을 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는 우리에게 권력을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권력이라는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없기 때문이다. 권력을 좆는 이들에게 전태일이 왜 필요할까. 필요할 때 그를 부르지만 돌아서면 초라한 그를 거두어버린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한 것이 노동자의 기득권이다. 가장 구역질나는 짓이 노동자의 권력 행세다. 이제 쓰레기통에 버려진 ‘강령’을 누가 다시 꺼내들까? 구겨지고 개똥이 묻은 강령을. 그 이름만으로도 완성된 강령인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펼쳐든다 시여, 오염된 광장이여, 광장마저 권력의 놀이터가 된 시대여, 시여, 그의 이름을 광야에 불러내어라. 노동자의 광장은 광야여야 한다. - 백무산

전태일은 살아 있다/백무산, 맹문재 엮음/푸른사상 20201217 128쪽 10,000원

전태일 열사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를
쓰레기 더미에서 본 적이 있다1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시퍼렇게 젊은 문장으로 살아 있다2

멈추지 말라
소리없이 잠들지 말라
너의 이름을
폐허 속에 파묻지 말라3

오빠는 근로기준법을 복음처럼 받아 안고 하루 16시간 미싱을 돌리는 여공들에게 전하려 노동청으로, 노동감독관과 대통령에게까지 뜨거운 진정서를 넣었건만 결코 거들떠보지 않던 그들, 나는 그들 머리맡에다 밤마다 먼지 뭉탱이와 객혈을 쏟아부을 거예요4

뼈를 녹이는 용광로 밖의 어머니, 크레인 밑의 어머니, 발전소 밖의 어머니, 안전하지 않은 공장 밖의 어머니, 그리고 먼 이역(異域)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들5

노동자의 노동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고 지구를 돌리는 힘이다.6

노동은 땀의 대가를 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50년 전 불살라진 법전에서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다7

우리는 기계였다
심장에
피가 흐르는8

청년 전태일은 살아 있다
높고 고귀한 이름으로 어느 기념관에 서 있지 않고
피압박 인민들의 고단한 삶의 곁에 이름 없이
오늘도 절규하며 싸우는 이름 없는 전사들 곁에
소리 없이9

노동을 하면서 노동자가 아니었던 내가 부끄러웠다10

이승복 대신에 전태일이 우리나라 위인동상 3등 되면 큰일이 나는 거였어요?11

말하자면 당신의 마지막은
우리 모두의 출발이 되었어.
지상 위에 우뚝 선
단 하나의 깃발이었어.12

전태일 열사 산화한 지 50주년
근로기준법 잉크 자국은
어디까지 왔나13

50년이나 흐른 그 노동은
아직도
비정규직 노동으로
해고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14

순하디순한 인간의 길에
지뢰를 매설하는
절제할 줄 모르는 자본을 거부해야 한다
시장을 정복의 대상으로 독점하는 제국에
솜뭉치 같은 꿈으로라도 대항해야 한다15

노동법의 조항마다 보이는 사람16

전태일은 어디에나 있다17

당신은 너무 멀리 있고
밥그릇은 너무 가까워
자꾸 잊는 날이 많습니다18


백무산, 맹문재 시인이 엮은 전태일 열사 50주기 기념 시집이다. 강성남, 공광규, 권미강, 권서각, 권위상, 권지영, 김미선, 김요아킴, 김용아, 김윤환, 김이하, 김정원, 김종숙, 김창규, 김희정, 박관서, 박설희, 박원희, 서안나, 성향숙, 송경동, 여국현, 윤석홍, 윤중목, 이명윤, 이상인, 이승철, 이영숙, 이창윤, 이태정, 장우원, 전비담, 전선용, 정세훈, 정연홍, 정원도, 조미희, 조 원, 주영국, 차옥혜, 채상근, 최기순, 최종천, 표성배, 황주경 시인들이 함께 했다.

여전히 필요할 때 그를 부르지만 돌아서면 초라한 그를 거두어버리는 비루하고 추접스러운 세상이다.


  1. 공허하게 들려온다 - 공광규
  2. 젊은 문장 - 권서각
  3. 그의 이름 - 권지영
  4. 내가 만일 - 김미선
  5. 어머니의 비가(悲歌) - 김이하
  6. 고3 학생들과 『전태일 평전』을 읽고 - 김정원
  7. 최저임금 - 김희정
  8. 우리는 기계였다 - 서안나
  9. 전태일은 살아 있다 - 송경동
  10.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 여국현
  11. 위인동상 3등 - 윤중목
  12. 전태일 열사 - 이승철
  13. 울고 있는 아버지 - 이창윤
  14. 시가 되지 않겠습니다 - 정세훈
  15. 그가 되살아온다 - 정원도
  16. 빠른 사람 - 조미희
  17. 전태일은 어디에나 있다 - 채상근
  18. 전태일 - 표성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