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구둣방 - 소리 없이 세상을 바꾸는 구두 한 켤레의 기적

꿈꾸는 구둣방
안 보이는 CEO와 안 들리는 직원들이 모여 만든 회사가 있습니다. 개업 3년 만에 망했다가 폐업 4년 만에 기적적으로 재기한 회사입니다. 이탈리아어로 편안하다는 뜻을 가진 아지오(AGIO)라는 수제구두를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2010년 12월, 보이는 게 없는 유석영과 듣지 못하는 노동자가 모여 파주에 공장을 세웠습니다. 시각장애인 사장과 청각장애인 노동자가 모여 구두를 만들었습니다. 공주에 있는 수녀원에서 첫 주문을 받았지만, 요구 사항이 까다로웠습니다. 석 달을 매달린 끝에 300켤레나 되는 주문에 성공했습니다. 물건이란 의미 이전에 품질로 팔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매장도 없고 영업사원도 없이 유석영 혼자 분투했지만 더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2013년 8월 30일, 청각장애인의 자립이라는 좋은 뜻을 펼치기도 전에 아지오는 문을 닫았습니다.

2017년 5월 14일, 청와대 비서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지오 구두를 다시 사고 싶다는 전화였습니다. 2012년 9월 국회에서 열렸던 이벤트 때 당시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구두를 구매했던 인연으로 재구매 의사를 알려왔던 것입니다. 유석영 사장은 아지오가 문을 닫아 만들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지 못한 회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며칠 뒤 5·18 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신은 낡은 구두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5·18 묘역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하는 대통령의 사진 한 장 때문에 청각장애인이 만든 아지오 구두라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을 주위에서는 말렸습니다. 처음 아지오를 시작할 때 구두 한 켤레만 받고 흔쾌히 모델을 자처한 유시민을 찾아갔습니다. 대통령이 영업을 해주셨는데 같이 살리자고 했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 형태로 조합원을 모았습니다. 2017년 11월 14일, 구두만드는풍경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청각장애인 대부분은 직장이 없어 수급에 기대거나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팍팍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지오는 청각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구두 만드는 일을 해온 이들만 채용하지 않습니다. 아지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구두 장인으로 키워서 사회에 공헌하는 직업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아지오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장인이 한 명 탄생하면 그 사람의 행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발걸음이 다져놓은 길 위로 더 많은 사람이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아지오가 이루고 지켜야 하는 목표입니다.

2021년 현재 아지오의 생산부에는 10층에서 남성화를 총괄하는 안승문 공장장, 5층에서 여성화를 총괄하는 김용진 공장장과 열 명의 청각장애인 직원들이 있습니다. 아직 서른 명의 장애인을 채용하자는 초기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듣지 못하는 노동자와 보이는 게 없는 유석영이 듣고 볼 줄 아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구두를 만들었고, 2021년 1월부터는 듣고 볼 수 있지만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정권 대표가 협동조합을 이끌고 있습니다. 구두만드는풍경은 거리에 상관없이 3만 원을 받고 찾아가 직접 고객의 발을 재고, 기계를 마다한 채 장애인의 손으로 구두를 만들고 있습니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지속하는 건 어렵습니다. 장애인을 장인으로 만드는 꿈을 비웃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여전히 가야 할 길이 한참 멀었다는 것을 아지오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지오의 목표를 이루기까지 하루 24시간이 걸린다면 이제 새벽 5시쯤 되었습니다. 가장 편안한 구두를 만들며 소리 없이 세상을 바꾸는 백년기업이 되길 바랍니다.

꿈꾸는 구둣방/아지오/다산북스 20210401 264쪽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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