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축제자랑

전국축제자랑
'아이들이 가진 마술에 대한 환상과 마술사가 가진 동심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어긋나 있는 현장(23)'에서 'K-자본주의와 K-샤머니즘의 이 단단한 결합(88)' 속에 '우리가 왜 짱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관련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때려 넣어 보여 주(104)'는 한마디로 '공무원들의 숙제(182)' 같은 지역 축제에 관한 여행기라니.

천하의 김혼비 작가라도 이번 책은 재미없겠다고 생각했다. 전작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와 《아무튼, 술》에서 뽐냈던 말빨과 글빨이 여기서 중단될까 염려됐다. 이런 걱정은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소개하는 프롤로그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기우였다. 재벌 걱정, 연예인 걱정, 건물주 걱정처럼 김혼비 글빨 걱정은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강릉단오제에 가서 내게도 후천적 단오 DNA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우연히 맛본 '삭은' 홍어에서 풍미 깊은 음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발견하고 여기에 인간의 의지를 개입시켜 '삭힌' 홍어로 바꾸어 낸 인간 주체성의 상징(62)'인 홍어를 맛보며 홍복해를 남발하는 작가를 생각하니 군침이 돈다. '한국 육수에 일본 면을 넣어 일본 이름을 달고 한국 땅에서 팔리는 하이브리드 음식(75)'인 의령 소바의 맛이 궁금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연어의 언어를 배워 3월에 남대천에 방류되는 치어들에게 몇 년 후 10월에 고향에서 벌어질 일을 미리 귀띔해 주고 싶었다(218)'는 양양연어축제는 축제에 가려진 기만과 잔인함을 알려준다. 이런 축제나 프로그램은 아주 많고, 더러는 매년 테레비에서 억지로 소개되어 동참하라고 강권한다. K스러움의 근원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외국의 생태 공원들이 이미 그러고 있는 것처럼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경이의 순간을 다 같이 직접 볼 수 있는 시설물과 프로그램을 만들고 매력적인 스토리텔링도 곁들여 아이들이 생태를 재미있게 관찰하는 축제(233)'로 발전하길 같이 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와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대개는 하는 쪽을 택하는(173)' 것이 지역축제이다. '1분마다 반복되는 "무료예요"가 본인들의 현재 상태를 고백하는 "무료해요"처럼(253)' 재미가 없다. '그럼에도 지자체들이 축제를 포기할 수 없는 건 불황일수록 그나마 유일하게 노력해 볼 구석은 관광 마케팅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뻥축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실력의 축구팀이 그나마 기댈 게 바로 뻥축구(69)'밖에 없는 지역 축제의 현실이 서글프다.

'감쪽같다의 어원으로 '귀한 곶감을 누가 뺏어 먹을까 봐 흔적도 없이 잽싸게 먹어 치운다'에서 비롯되었다는 설(272)'이라든가, 널뛰기가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널뛰듯 한다라는 표현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42)'라는 K스러움을 찾으면 이상한데 더 진심으로 축제에 동참하게 만든다. 40년 동안 총 두 개쯤 먹은 박태하 작가도 지리산산청곶감축제에서 곶믈리에가 되어 생애 누적 곶감 섭취량이 열다섯 개가 되었다.

작가는 소수의 사람들이 성실히 지켜 나가고 있는 축제에 대한 가만한 기쁨을 이렇게 밝혔다. "정말이지 이런 걸 만나는 순간이 너무 좋다. 어딘가에 '한국감연구회'라는 단체가 있고, 한쪽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과일 선발대회'가 열리고 거기에 입상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다. 감 박피기를 개발하는 사람이 있고, 얼레 가방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고, 전국을 다니며 연싸움을 하는 이들이 있고, 한때 만든 대금을 끼고 다니며 군밤 옆에 펼쳐 놓는 이가 있다. 축제장 음지의 꽃인 품바도 있고, 그 품바에 위로받는 팬들이 있고, 썰렁한 관객석 앞에서 열창하는 무명 트로트 가수들이 있고, 아이들을 달래 가며 공연하는 마술사가 있고, 만만찮은 지역민들의 입담을 능숙히 받아치는 노련한 사회자들도 있다. 우리가 아는 세계, 아니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바깥에서 생각보다 수많은 취향과 노력이 질서를 이루어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282)."

아울러 몰라도 되는 축제를 기억해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 '축제를 다니며 워낙에 엄청난 '세상에 ○○으로 ○○○을 한다고?'에 익숙해져서 그렇지 우리가 지역 축제를 쫓아 나선 마음 깊은 곳의 동력은 결국 '맞아. 세상에는 ○○이란 게 있었지'와 '그치, 그걸로 ○○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의 합주와 변주였다. 몰라도 일상생활에 하등 지장 없고 그래서 알 필요 없는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해 두고 싶어서였다(279)'. 덕분에 혼복하고 하태하태하다.

글빨을 의심했던 미안함도 잊게 만들며 낄낄거리다 보면 지역 축제라면 떡을 공짜로 준다고 해도 가지 않는 내가 강릉단오제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꼬막축제에 생애 최초로 가고 싶은 안달이 생겼다. 전국축제자랑을 읽으면 사라지고 없어졌다고 믿었던 K스러움이 꿈틀댄다. 연어처럼 돌아온 것이다. 잡아 죽이지는 말자.

전국축제자랑/김혼비, 박태하/민음사 20210226 296쪽 15,000원


덧. 오탈자
  1. 27쪽 9행 할머니 들이 → 할머니들이
  2. 188쪽 12행 입에 넣기커녕 → 입에 넣기는커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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