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 2034년,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엘리트 계급의 세습 이야기

The Rise of the Meritocracy, 1958
2034년 영국은 지능 검사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 되어 아주 평등한 능력주의 세상이다. 지능 발달을 예측할 수 있는 연령이 점차 낮아져 2020년에는 3세에도 가능해졌다. 지금은 태아 시기까지 검사가 앞당겨졌다. 1990년 무렵에 아이큐 125 이상인 모든 성인이 능력주의 체제에 속하게 되었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영국은 재능 있는 사람에게도 육체노동의 굴레를 씌우면서 자원을 탕진했으며, 자기 능력을 인정받으려고 시도하는 하층 계급 성원들을 가로막았다. 사회주의자들은 유산 상속에서 생겨나는 종류의 불평등에 반대했고, 사회주의자들이 가장 발전시킨 형태의 평등은 기회였다. 교사들은 무의식적으로 같은 계급 출신 아이들을 선호했고, 구식 시험은 교양 있는 가정 출신에 유리했다. 교육의 질과 양이 모두 지능에 따라 결정되지 않으며 영리한 아이들은 학교를 너무 일찍 떠났고, 우둔한 아이들은 학교를 너무 늦게 떠났다.

지능 검사를 포기하면 다시 필기시험 결과에 의지해야 했고, 필기시험을 포기하면 교사가 작성한 내신 성적표에 의지해야 했다. 편향이 적은 지능 검사야말로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었고, 사회주의자들조차 이런 결과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회 변화는 경제에서 먼저 생겼고, 압력은 국제 경쟁에서 나왔으며, 동원된 수단은 교육이었다. 기나긴 투쟁 덕분에 사회는 마침내 지적으로 우수한 사람은 꼭대기로 올라가고 지적으로 열등한 사람은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원리에 순응하게 됐다.

현대 사상의 기본 원리는 인간은 불평등하다는 사실이며, 사람마다 능력에 따라 인생의 지위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역사적 사명은 능력에 따른 선발의 원리를 새로운 인생관으로 신봉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인간들 사이에 우열이 있다는 사고가 받아들여지자 경제적 진보는 육체노동자가 아니라 새로운 기법을 고안하는 발명가와 조직가 덕분이 됐다. 생산 증대에 기여하는 능력을 지능이라고 하며, 사회는 이 척도에 따라 구성원들을 평가한다. 마침내 임금 인상을 받을 주인공은 바로 능력주의가 됐다.

아이큐 125 이상인 어린이는 대부분 엘리트 집단의 자녀이다. 오늘의 상층 집단이 내일의 상층 집단을 길러낼 가능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욱 높아졌다. 엘리트 집단은 세습의 원리와 능력의 원리가 결합하며 세습화되는 중이다. 지식+노력=능력이라는 중대한 변화가 거의 완성됐다.


마이클 영이 1958년에 발표한 능력주의로 번역하는 Meritocracy(라틴어 meritum에서 유래한 merit와 그리스어 어근 -kratia에서 유래한 -cracy를 결합한 조어)가 지배하는 미래를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논문 형식으로 쓰인 소설이라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 거절을 당했다.

소설은 능력주의를 예찬하며 체제에 반하는 저항 운동에 대해 걱정한다. 이로 인해 능력주의를 설파한 책으로 알려졌지만 작가의 의도가 왜곡됐다. 작가는 서문에서 "좋은 사회는 권력뿐 아니라 반란을 위해서도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며 "누군가 타고난 것이나 타고나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이 스스로 한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능력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만난 부작용은 소설에서 예견한 대로 나타나서 지금 경험하고 있다.

말미에 "기회균등이란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올라갈 기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자 타고난 덕과 재능, 인간 경험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모든 능력, 삶의 잠재력을 지능에 상관없이 최대한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만드는 일이다"라는 〈첼시 선언〉으로 능력주의에 반하는 대안을 짧게 제시한다.

능력주의The Rise of the Meritocracy, 1958/마이클 영Michael Young/유강은 역/이매진 20200406 320쪽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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