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with the label 나무로그

20세기와 21세기 초의 이데올로기 장기파동

Image
20세기와 21세기 초의 이데올로기 장기파동 우리는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자유주의 시대부터 시작할 수 있는데, 이 시대에 다양한 유럽 나라들에서는 자유방임시장 개인주의라는 사상에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진영이 지배했고, 보수주의 우파는 대부분 수세적인 입장이었다. 이 시대의 주인 기표는 자유였다. 자유주의 시대는 세계대전과 세계공황이라는 재앙으로 끝을 맺었고, 그 자리는 정의라는 주인 기표를 가진 자유주의의 오랜 적수인 사회주의가 곧 서구에서는 민주적 사회주의가, 동구에서는 권위주의적 사회주의가 차지했다. 자본주의의 위기에 직면해, 붉은 러시아는 국가 중심적이고 매우 억압적인 일국 사회주의의 종주국이 됐다. 동시에, 루스벨트는 자신의 진보적 뉴딜을 고안 중이었는데, 이 같은 뉴딜은 (프랑스에서 더 짧은 기간 동안 레옹 블럼의 인민전선 내각이 그랬듯이) 친노동정책과 사회민주주의적 공공지출에 우선순위를 뒀다. 자유주의가 위기에 빠지면서, 사회주의의 발흥에 대한 우익의 반작용으로 파시스트 민족주의가 출현했는데, 이들은 노동계급운동 담론의 일부를 전유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사회주의가 철의 장막 양쪽에서 발전했다.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나타난 계급타협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사회민주주의적 협약형태를 띠었고, 이른바 영광의 30년, 곧 1945년과 1975년 사이 자본주의가 경험한 경제성장의 황금시대로 이어졌다. 소련과 그 위성국에서 이 같은 흐름은 공산주의 계획경제와 사회복지정책으로 표출됐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비롯한 잇따른 위기들은 사회민주주의 시대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이 같은 국면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 질서가 탄생할 수 있는 공간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이후 헤게모니 싸움에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칼 포퍼, 밀턴 프리드먼 같은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은 신자유주의가 승리했다. 이런 사상가들은 사회주의 세계를 겨냥해 낭비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새로운 브랜드의 보수정치인을 통해 신속하게 이행됐다.

플라스틱 바다 - 지구의 바다를 점령한 인간의 창조물

Image
1997년 여름. 하와이에서 캘리포니아로 항해하던 찰스 무어는 그림 같은 바다에 이상한 덩어리와 부스러기들이 흩어져 있는 걸 봤다. '낮이고 밤이고 하루에 몇 번을 내다봐도 플라스틱 조각이 물 위로 떴다 잠겼다(13)'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의 중간 지점이었다. 머지않아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the Great Pacific Garbage Patch)라고 불리게' 되지만 대형 잔해 위에 플라스틱 부스러기로 가볍게 양념을 친 '묽은 플라스틱 수프(14)'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상황이었다. 1997년의 항해 때 본 것은 '전체 그림으로 치면 겨우 조그만 점 하나에 불과한 것 같았다(74)'. 찰스 무어는 공식 탐사팀을 꾸리고 1999년 8월 15일에 태평양 환류(還流 Gyre)가 무풍지대에 만든 쓰레기 섬으로 떠났다. '지독한 쓰레기들을 많이 수집했다. 그물과 로프 더미는 물론이고 화학 물질이 들었던 드럼통, 물러진 표백제 병, 일본식 그물 부자(浮子) 여러 개, 신발창을 오려내고 남은 발표 고무 시트, 조리용 사워크림 통도 있었다(109)'. '플라스틱은 마치 육상선수 같다. 종종걸음을 치다가, 하늘을 날고, 헤엄도 친다. 여권 없이도 국경을 건너 어디든 간다. 말 그대로 불법 체류자다(88)'. 무어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쓰레기 문제가 너무나 속상했던 것 외에는 어떤 특별한 동기도 없었(236)'지만, 환류 탐사에 관한 논문을 쓰며 단편 영화도 찍었다. '2001년 12월. 1999년 환류 탐사로부터 1년 반이 지났고, 운명의 첫 번째 환류항해로부터 3년 반이 지났다. 『해양 오염 회보』의 제42권 12월 호가 도착했다. 이렇게 씌어 있었다. "북태평양 중앙 환류에서 플라스틱과 플랑크톤 비교". 이 간결한 다섯 쪽짜리 연구가 그간의 노력을 증명하고 있었다(238)'. 바다에 플라스틱이 있는

도그맨, 신은 불행이 있는 곳에 개만 보냈다

Image
뤽 베송 감독이 만든 영화 〈도그맨 Dogman, 2023〉은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Partout où il y a un malheureux, Dieu envoie un chien)"는 의미심장한 글귀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더글러스(케일럽 랜드리 존스 扮)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형이 투견을 키우던 사육장에 그를 가두었습니다. 뤽 베송 감독은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영화를 만들기 몇 해 전에 아버지가 잔인하게 아이를 몇 년 동안 개와 함께 우리에 가두었습니다. 경찰이 아이를 발견했을 때, 아이는 네 발로만 움직였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개들은 버림받은 더글러스를 공격하지 않고 보호했고, 학대를 견디며 개와 함께 살았습니다. 불행이 있는 곳에 신은 개를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쏜 총탄에 맞아 하반신 마비가 된 더글러스는 은둔자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를 읽는 더글러스 곁에는 셰익스피어를 들어주는 개들이 있습니다. 생계 수단으로 여장을 하고 릴리 마를렌(Lili Marlene)을 부르는 장면은 인상적입니다. 인간들 앞에서 부르지만 개들에게 받치는 노래입니다. 불행이 있는 곳에 신(God)은 없고 개(Dog)들만 있습니다. 신은 불행이 있는 곳에 개만 보내고 오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불행을 만들고 동물은 구원을 합니다. 더글러스는 신에게 따지지 않았고, 개들은 끝까지 곁을 지켰습니다. 인간은 신이 아니라 개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반려인과 반려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기 日記

Image
바이러스엔 "국경이 없"지만 "우편번호가 건강 상태를 결정"한다. 우리는 그 말을 얼른 알아듣는다. (15) 9월에 책을 낸 이후 인터뷰 때문에 사람을 서너번 만났는데, 지난 일년간 뭘하며 지냈느냐는 질문을 매번 받았다. 2020년에 저는 창밖을 보며 지냈습니다. (26) 2020년의 눈사람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29) 봄비 내릴 때 책상 앞에 앉았는데 소설 한편을 마무리하고 나오니 낙엽이 떨어지는 때,라는 패턴으로 시간이 흐르는 일을 직업으로 택해 살다보니 나이를 띄엄띄엄 생각하거나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32) 하지만 지금 사람들의 명은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구조 構造 되는 것이다. (34) 사람들이 전염을 두려워하는 마음에는 내가 병에 걸리는 경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겠지만 내가 매개가 되어 남을 병에 걸리게 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고 믿는다. 이 걱정의 바탕은 자기가 남에게 병을 옮긴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일 수도 있고 우애일 수도 있다. (37) 타인의 삶과 죽음을 자기 삶의 지표로 삼는 일에 나는 반대하고 있지만, 어떤 삶과 죽음은 분명 신호이자 메시지이고 그것을 신호이며 메시지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삶은 늘 있다. 이때 발신자는 살거나 죽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속한 사회다. (74)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이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76) 추운 곳에서는 아 씨발 춥다고 웅크리고 더운 곳에서는 씨발 덥다고 웅크린 채로 그런 장소를 이미 일상으로 겪는 삶과 그 삶을 그런 일상으로 내몬 사람들이며 구조 構造 를 생각했다. (100) 세월호가 맹골수도에 가라앉

공정감각 - 〈에브리타임〉에서 썰리고 퇴출당하며 벼려낸 청년들의 시대 감각

Image
'진실'이 맥없이 지워지고 '사실'이 근거 없이 조롱과 폄훼를 당하는 것. 바로 한국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점 중 하나다. 거짓일지라도 혹하게 할 만한 선정적 소문과 풍문, '카더라', 맥락을 삭제해 그럴듯하게 이어 붙인 가짜뉴스. 거짓, 가짜, 짜깁기로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동원하고 물리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권력과 권위 그리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현실. 나는 이것을 '반지성주의'라 부르기로 했다. 반지성주의는 '아는 것이 힘(권력 혹은 권위)'이 아니라 전혀 모르거나 알려 하지도 않고 알면서도 비틀어버린 '거짓과 가짜가 진실과 사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는 힘'이 팽배해진 상태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이러한 힘을 만들어내며 표심을 얻는 정치인, 돈을 버는 인터넷 인플루언서, 커뮤니티 내 관심의 중심에 선 '관종'이 적지 않다. 동시에 이들을 추종하는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상태에 놓인 사람들 역시 적지 않아 보인다. 진실과 진짜가 아닌, 거짓과 가짜가 힘을 발휘하는 세상에서 대학은, 대학생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14)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사회적 소수자'라는 개념으로 소수자가 이미 존재하거나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에서 만들어지는(구성되는)' 존재임을 분명히 한다. 권리의무 역학에서 소수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의무에 대한 부담은 똑같지만 권리 향유에서 제약, 차별, 부당함을 '당하는' 존재라고 나는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 한국보다 인권 감수성이 높은 사회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이동권에 제약이 없고 차별받지 않으므로 이동에서 부당한 경험을 현저히 덜 한다.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이동권이라는 권리를 제약 없이 누릴 수 있는 사회에서 장애인은 그러므로 소수자가 아닐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한국에서는 소수자가 '된

능력주의는 허구다 - 21세기에 능력주의는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가

Image
능력 merit 은 개인이 갖고 있는 특징이지만, 능력주의 meritocracy 는 사회가 갖고 있는 특징이다. 능력주의란,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 보상을 해주는 사회 시스템을 뜻한다. 능력주의라는 말은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 Michael Young 이 자신의 풍자 소설 『 능력주의의 출현 The Rise of the Meritocracy 』(1958년)에서 처음 만들어낸 신조어로, 그는 이 책에서 철저하게 지능 지수와 시험 결과, 개인의 능력만을 토대로 운용되는 사회가 실현되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했다. (12)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온갖 특권을 성공적으로 물려줄수록 자녀들의 삶의 결과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상속에 의해 결정된다. (23) 상속주의와 능력주의는 분배의 〈제로섬 게임〉이다. 둘 중 하나가 많아지면 나머지 하나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금의 상황은 개인의 능력이 소득과 부의 분배에 상속만큼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즉, 상속주의가 능력주의를 앞서고 있다. (38)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는 학교는 사회적, 문화적 재생산의 기구, 즉 〈사회적 계층을 재생산하는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56) 교육 기회의 평등은 능력주의 시스템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교육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진 적은 거의 없다. 가족의 사회경제저 지위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특혜들은 교육적인 성취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학교는 사회에 존재하는 기존의 불평등을 오히려 더 반영하고 심화시킨다. (80)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 이란 근본적으로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는가, 즉 당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의 가치를 뜻한다. (85) 또 하나의 비능력적 요인인 문화적 자본 cultural capital 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구성원으로 온전히 인정받기 위해 알아야만 하는 모든 것, 즉 그 집단의 규범과 가치관, 신념, 스타일, 매너, 학위, 여가 활동, 라이프스타일 등에 대한 지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위기 그리고 새로운 전망

Image
요즘은 누구라도 '위기'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영양가 없는 수다꾼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위기라는 단어가 워낙 엄밀하지 못하게 자주 회자되다 보니 이제는 말 자체가 진부해진 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히 진단컨대 지금 우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만약 우리가 처한 위기의 특징을 정확히 밝히고 위기의 독특한 역학 dynamics 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교착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정치적 재편성 political realignment 을 통해 사회 변혁으로 나아가는 길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13) 헤게모니란 지배계급이 자신의 세계관을 사회 전체의 상식으로 상정함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과정을 가리키는 그람시의 개념이다. 조직 차원에서 헤게모니의 대응물은 헤게모니 블록 bloc 이다. 헤게모니 블록이란 지배계급이 모은 이질적인 사회 세력들의 연합이며, 지배계급은 이 연합을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확고히 한다. 만약 피지배계급이 이 질서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더 설득력 있는 새로운 상식, 즉 대항 헤게모니 counterhegemony 를 구축해야 하며, 더 강력하고 새로운 정치적 동맹, 즉 대항 헤게모니 블록을 구성해내야 한다. (16) 적어도 20세기 중반 이래 미국과 유럽에서 자본주의의 헤게모니는 옮음 right 과 정의 justice 의 서로 다른 두 측면을 결합함으로써 형성되었다. 한 측면은 분배 distribution 에 초점을 맞췄고, 다른 측면은 인정 recognition 에 초점을 맞췄다. 분배 측면은 사회가 나눌 수 있는 여러 재화, 특히 소득을 어떻게 할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을 표명한다. 즉 분배 측면은 사회의 경제구조를 다루며, 간접적인 방식이긴 해도 계급 분열의 쟁점을 다룬다. 반면 인정 측면은 사회가 존중과 존경을, 구성원이 되는 것과 소속감의 도덕적 표지를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Image
도보여행가인 김남희 작가는 '모험심이라고는 병아리 눈물만큼도 없고, 잠귀가 밝아 잠자리를 가리는데다가, 안 먹는 음식이 많고,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는 성격(240)'이랍니다. 그런데도 여덟 살 때 혼자 기차를 타고 포항에서 대구로 떠난 것이 첫 여행이었답니다. 서른넷에 회사를 그만두고 배낭을 꾸린 후 20여 년이 되도록 유목민으로 살았습니다. 책은 코로나19가 창궐해서 여행하지 않는 여행작가가 됐을 때 얘기입니다. 싱글, 여성, 여행작가. 근사한 조합이지만 '자유로움은 경제적 불안함과 동의어'입니다. '외로움과 불안함을 반반씩 섞어 자유 위에 덧바른 삶(28)'입니다. 바이러스가 세상을 멈췄지만 '다리에 힘이 남아 있는 한 매일 산책을 하며, 꾸준히 달리기를 하며' '조금씩 속도가 느려지겠지만 멈추지 않(51)'았습니다. 방과후 산책단, 방과후 글쓰기단, 에어앤비를 하며 버티다 보니 타인의 호의가 쌓였습니다. 통장이 텅장으로 변했지만 전염병에 맞서는 연대의 백신 같은 택배 상자가 배송되는 호의가 이어졌습니다. '바이러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공포에 작은 마음을 모아 맞서는 사람들'의 '우아한 연대(203)'였습니다. 덕분에 전생에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굶기를 밥먹듯이 하고 자(65)'라서 냉장고를 포기하지 않았고, '도예가 밑에서 뼈빠지게 일만 하다 제 그릇 하나 구워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79)'난 것 같아 사 모은 그릇으로 밥상을 차렸습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은수저로 밥을 먹는 사람(40)'도 됐습니다. 서른을 넘긴 후 나는 늘 혼자 살아왔는데, 정말로 혼자였던 날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매 순간을 타인의 친절에 기대어 살아왔다. 지친 무릎이 꺾이려고 할 때마다 일으켜세워주던 손들이 있었다. (8) 코로나 이후 집에 갇혔던 시간 동안 나는

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Image
중년 1인 가구, 홀로 나이 들어가는 '에이징 솔로 Aging Solo'가 대폭 늘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혼자 사는 게 과도기적 상태가 아니라 삶의 기본값인 사람들이 나이 듦이라는 과제를 함께 직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노인 1인 가구는 노년기에 접어든 뒤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혼자인 상태로 중년에서 노년으로 생애 전환을 겪게 될 대규모 집단이 등장했다. (11) 세상이 비혼인 중년을 취약하고 비정상적이며 비참해질 것이라고 바라보는 이유는 나이 들어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 생애 과제들을 제대로 치러내지 못하리라 예단하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건 결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성숙해지고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과정은 애초에 결혼 여부와 상관 없는 일이다. (12) 혼자 사는 사람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한데, 이 책에서 말하는 에이징 솔로는 결혼의 경험이 있건 없건 스스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살기를 선택해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는 중년을 뜻한다. 대다수가 1인 가구지만, 친구 등 동거인이 있는 경우에도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비혼의 중년은 에이징 솔로에 포함했다. (13)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1인 가구의 수가 결코 적지 않음에도 '혼삶'을 지속적인 삶의 방식으로 채택한 에이징 솔로 여성이 왜 아직도 앞에서 인용한 연구 참여자의 설명처럼 '폭력' '무게감'이 실린 눈초리를 받 는가 하는 점이다. 전통적 가족의 모습에서 이탈했다고 해서 왜 '남편도, 자식도 없는' 결핍의 인생이라고 바라보는 걸까? 왜 외롭고 힘들 거라고만 짐작하는 걸까? (39) 비혼을 정치적 견해 표현으로 여기는 사람이든, 자신에게 알맞은 삶의 방법을 고르다 보니 어쩌다 비혼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든, 그 선택의 바탕에는 제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 묶여 있지 않을 때 자신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통된 가치관이 있다. 도시에서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Image
네 살 무렵 폴은 혼자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로 가서 봉투에 사탕을 그득하게 담고 은박지로 잘 싼 체리 씨 여섯 개를 내밀었다. 위그든 씨는 돈이 조금 남는다며 거스름돈으로 1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꺼내 주었다. 폴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열대어 가게를 운영하던 어느 날. 대여섯 살 된 남매가 물고기를 사러 왔다. 아이들은 몇 가지 물고기를 고르고 5센트짜리 동전 두 개와 10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내밀었다. 폴은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서 맡았던 사탕 향기가 향수(鄕愁)가 되어 콧잔등을 스쳤다. 폴은 1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거스름돈으로 주었다.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서 나는 박하사탕 향기와 위그든 씨의 너털웃음 소리가 들렸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인 벤슨 선생님을 짝사랑하게 된 폴은 선생님 생일에 야생 식물로 만든 화환을 만들어 드렸다. 선생님은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파티를 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벤슨 선생님은 결근했다. 머루랑 달래 등 야생 열매와 독이 있는 예쁜 담쟁이 잎으로 만든 화환 때문에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폴은 10일 동안 정학 처분을 받았다. 벤슨 선생님의 병실을 찾았을 때, 선생님은 붕대로 겨우 눈만 보일 정도로 얼굴을 감고 있었다. 선생님은 폴을 원망하거나 탓하기는커녕 특별한 선물을 해준 폴에게 말했다. 아들을 낳으면 꼭 너처럼 키우겠다고. 동네에 전화기가 있는 집이 드물었던 일곱 살 때 집에 참나무로 만든 커다란 전화기기 있었다. 신기한 상자에는 '안내를 부탁합니다'라는 똑똑한 요정이 살았다. 혼자서 알아낼 수 없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요정에게 전화를 걸면 다 해결해주었다. 어느 날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 전화하자 요정은 "그 새가 노래 부를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별생각 없이 전화기를 들고 무의식적으로 "안내를 부탁합니다."라고 하자 요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이 샐리라는 걸 알았고,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즐거운 데이트를

꼬리 - 시베리아 숲의 호랑이, 꼬리와 나눈 생명과 우정의 이야기

Image
시베리아 수호랑이는 앞발 볼의 너비가 보통 10.5~13센티미터이다. 시베리아호랑이 최대의 발자국인 으뜸 수호랑이를 왕대(王大)라 부른다. 이마에는 임금 王 자, 등줄기로 넘어가는 뒷덜미에는 큰 大 자가 뚜렷한 가장 크고 강한 수호랑이다. 왕대들은 2,000제곱킬로미터(지리산 국립공원의 면적은 약 473제곱킬로미터) 이상의 광대한 영역을 돌아다닌다. 꼬리는 앞발 볼의 너비가 13.1센티미터로 엄청난 크기인 왕대다. 소금절벽에서 꼬리로 물모기를 쫓으며 사냥을 하려고 잔뜩 웅크린 모습을 처음 보면서 '꼬리'라고 불렀다. 꼬리는 왕대였지만 눈빛과 몸짓에서 세월이 묻어나는 전성기를 지난 늙은 왕대다. 꼬리는 사냥에 자신감이 부족해서 잡을 수 있을 때 많이 잡아놓으려는 생각, 탐욕으로 가축을 습격하기도 했다. 꼬리는 사람보다 굶주림이 무서워 개를 잡았지만 굶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개 다섯 마리를 먹어도 멧돼지 한 마리만도 못하다. 늙는다는 것도 불완전했고 늙어서 스스로 생활해야 하는 것도 불완전했다. 꼬리에게 끌리는 것은 완전한 것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에 대한 연민이었다. 꼬리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수호랑이다. 꼬리는 야생에 있고 나는 문명에 있기 때문에 꼬리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식은 모르는 척하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다 끝내 마을 건초창고에서 갇힌 꼬리를 만났다. 폭설과 혹한에 먹이감이 부족해 마을로 내려왔다 건초창고에 갇히게 된 것이다. 결코 만나지 말아야 할 곳에서 오래전 헤어진 옛 연인을 우연히 만나 늙고 시든 얼굴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식인호랑이라는 누명을 벗기려고 돈을 건네주고 마취를 하여 마을을 벗어나 풀어줬다. 꼬리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고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꼬리가 사라진 지 14개월 후, 양지바른 바위굴 입구에서 엎드려 죽은 호랑이 주검을 발견했다. 꼬리였다. 27년의 추적과 20,000시간의 잠복으로 시베리아 호랑이를 1500시간 넘게 영상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 - 대전환 시대, 한국 복지국가의 새판 짜기

Image
더 이상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구조화되어가고 있는 격차는 개천에서 태어난 용의 씨를 말리고 있는 수준이다. (43) 불평등과 불공정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대안과 희망이 부재한 현재적 조건은 결국 이들을 높은 수준의 울분으로 몰아넣는다. 앞서 제시한 불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에 대해 아주 높은 수준의 울분을 보이고 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울분이 높은 수준을 보이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7)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의 전형적인 양상인 '격차, 장벽, 불안'은 더욱 증폭될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증폭될 것인가? (...) 현재의 도-농간, 수도권-비수도권 간의 격차 역시 경제사회적 격차가 투영되는 한편 인구의 절벽 현상과 맞물려 더욱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재의 격차사회는 '초격차사회'로 변화될 것이다. (...) 우리 사회의 소득과 자산, 교육의 불평등이 낳은 장벽은 미래에 이 불평등한 구조가 초격차사회를 낳는 구조로 더욱 공고화될 경우 이제 장벽을 넘어 '단절'의 사회가 될 것이다. (...)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각종 자연적, 사회적 재난 앞에서 단순히 불안함을 넘어 '공포'의 단계를 접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66) 자본주의경제와 주택 체제 간의 연관성을 중요시하는 입장들은 주택이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자본의 하나이기 때문에 복지국가를 통해 탈상품화하는 데 큰 한계가 있다고 봤다. 20세기에 대부분의 발전된 자본주의사회에서 주택은 '상품화→탈상품화→재상품화'의 방향으로 변해왔고, 여기서 탈상품화 단계는 제2차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사회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국가의 힘과 공공 부문이 팽창했던 예외적인 시대였다는 것이다. (87) 1987년 민주화 이후 권위주의 세력과 보수야당이 합의한 소선구제와 다수득표제의 공고화는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새로운 정당이 제도권 정치에 진입할 수 있는 장벽을 높이는

좌파의 길 -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Image
전반적으로 우리에게는 우리 시대에 부합하는 자본주의 및 자본주의 위기의 개념들이 별로 없다. 나는 이런 개념의 하나로 '식인 자본주의'를 주창한다. (30) 착취와 수탈 모두 축적에 기여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착취는 자유 계약에 따른 교환으로 위장한 채 가치를 자본에 이전시킨다. 즉, 노동자는 노동력 사용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자본은 '잉여노동시간'을 전유하는 한편 '필요노동시간'만큼만 급여를 지불한다. 반면에 수탈의 경우에는 자본가가 타인의 자산을 (대가를 거의 혹은 전혀 지불하지 않은 채) 폭력적으로 징발하는 쪽을 선호하기에 이러한 온갖 세심함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즉 강제 노동, 토지, 광물, 에너지를 기업 활동에 몰아줌으로써 기업의 생산비를 낮추고 이윤을 늘린다. 이렇듯 수탈과 착취는 서로를 배제하기는커녕 손잡고 함께 간다. (51) 자본주의가 경제적 시스템도 아니고 윤리적 삶의 사물화된 형태도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자본주의를 '제도화된 사회 질서an institutionalized societal order'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이해라는 게 나의 답이다. 이를테면 봉건제 같은 하나의 사회 질서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58) '수탈'이 자본주의에 구조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정의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자. 앞장에서 본 대로, 수탈은 다른 수단을 통한 축적이다. 즉, 착취와는 다른 방식을 통한 축적이다. 자본이 임금을 대가로 '노동력'을 구매하는 계약 관계 대신 수탈은 인간 역량과 자연 자원을 징발하여 자본 확장 회로에 징용함으로써 작동한다. 징발은 신세계 노예제에서 그랬듯이 뻔뻔스럽고 폭력적일 수도 있고, 우리 시대의 약탈적 대출과 담보물 압류에서 그렇듯이 상거래라는 베일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또 수탈당하는 주체는 자본주의 주변부의 농촌이나 토착민 공동체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 중심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

Image
수면에 관련된 상품을 파는 도시가 있습니다. 잠옷 차림의 외부인들이 몰려들며 대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입니다. 꿈을 파는 백화점입니다. 잠들어야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먼 옛날, 시간의 신에게 세 제자가 있었습니다. 첫째 제자는 미래, 두 번째 제자에게는 과거를 주었습니다. 꿈을 꾸는 능력을 받은 세 번째 제자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세웠고 후손들에게 대물림됐습니다. 꿈은 '숨 가쁘게 이어지는 직선 같은 삶에, 신들이 공들여 그려 넣은 쉼표(32)'입니다. '현실을 침범하지 않는 수준의 적당한 다스림(33)'이 시간의 신이 세 번째 제자에게 바란 것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후불제입니다. 손님은 꿈을 꾼 후 설렘, 성취감, 자신감, 신기함, 호기심, 질투심, 열등감 등등 귀중한 감정으로 꿈값을 지불합니다. 숙면 캔디와 심신 안정용 쿠키는 무료로 줍니다. 대단한 미래는 없을지 몰라도 즐거운 현재와 오늘 밤의 꿈들이 있습니다. 꿈의 가치는 손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손님 스스로 깨닫는 꿈이 좋은 꿈입니다. 꿈 제작자 정기총회는 크리스마스 한 시즌만 일하는 산타클로스의 오두막에서 열립니다. 산타는 '크리스마스까지 어린애들 취향을 알아내서 꿈을 만들어 놓으려(175)'고 일 년 내내 바쁩니다. 올해 정기총회는 '꿈을 예약해놓고 예약 당일에 제시간에 잠들지 않아서 끝내 나타나지 않는 손님(160)'들이 늘어나서 노쇼 대책이 안건입니다. '자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을 하느라 잠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재미나는 것보다 더 즐거운 꿈을 만들(186)'자며 싱겁게 끝났습니다. '좋아하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거(87)'랍니다. 짝사랑을 시작하는 손님, 어서 오세요. 영감(靈感)은 '답이 나올 때까지 고민하는지, 하지 않는지, 결국 그 차이(231)'입니다. 영감이 필요하신 손님, 어서 오세요.

그 많던 나비는 어디로 갔을까 - 제왕나비의 대이동을 따라 달린 264일의 자전거 여행

Image
이동하는 제왕나비를 따라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자전거로 왕복하겠다는 생각은 제왕나비를 찾아가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에서 시작되었다. 2013년 친구와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멕시코를 여행하면서 우리는 제왕나비가 겨울을 나는 지역을 찾아가 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4월에 접어들어 제왕나비가 북쪽으로 이동을 시작했을 때여서 가지 않았다. 이후 몇 년 동안 나는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왕나비를 찾아가겠다는 생각은 점점 커져 대이동을 자전거로 함께하고 싶다는 꿈으로 바뀌었다. 2016년, 드디어 몽상을 멈추고 여행 시기를 2017년 봄으로 정했다. 이제 생각은 계획이 되었고 세부 계획을 세울 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13) 드디어 출발할 때가 되었다. 2017년 1월 캔자스주 캔자스시티 외곽의 집을 떠나 용감하게 버스에 오른 후 52시간을 달리고, 다시 자전거로 이틀을 더 달려 멕시코 미초아칸주 엘로사리오(El Rosario)의 제왕나비 보호구역 주차장에 도착했다. (14) 이동 거리가 얼마나 될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멕시코의 제왕나비 월동 지역에서 캐나다까지 갔다 돌아오려면 약 1만 6,000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려야 할 것이다. 3월에 출발하면 제왕나비와 마찬가지로 여름에 캐나다에 도착하고 11월에 다시 멕시코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한 달에 1,900킬로미터는 족히 달려야 한다. (22) 장거리 여행에서 의심은 근육의 피로만큼이나 해롭다. 그러나 다리 근육을 단련하면 더 멀리 갈 수 있듯 마음도 단련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큰 그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가야 하는지를 절대 생각하지 않고 대신 다음 1킬로미터, 다음 마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다음 식사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당장 가야 하는 단거리만 해결하면 되고 작은 승리를 축하하다 보면 거리가 늘어난다. 이 전략을 알고 있는 건 장거리 여행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자전거로 볼리비아에서

미래의 지구 - 온난화 시대에 대응하는 획기적 비전

Image
내가 확신하는 단 한 가지는 어떤 형태가 됐든 간에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혁명의 정의(定義)와는 무관하게, 앞으로 수십 년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의 모든 것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수준의 변화다. 오래된 세계는 죽었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31) 기후와 관련된 가장 커다란 거짓말은 개개인의 행동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에너지 소진과 지속적인 실패를 낳는 레시피나 다름없다. 개개인의 행동은, 오직 그 행동으로 인해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때에만 유용하다.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뿐이다. (32) 기후 비상상태와 관련해 가장 충격적인 진실 중 하나는, 산업혁명 초창기 이래 인간의 모든 탄소 배출 중 절반이 1992년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019년 지구의 탄소 배출은 인류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가 저지른 일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충분한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계속 지구온난화에 일조했다. 우리는 이 변화가 수 천 년 동안 계속될 것이며 그 변화에 가장 적게 기여한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을 알고 있다. 지구 역사상 가장 부자인 사람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기후변화는 언제나 선택의 문제였고, 우리의 지도자들은 수십 년간 거듭 잘못된 선택을 하며 우리를 실망시켰다. (52) 우리는 소유의 개념을 버리고 상대방과의, 그리고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이 세계와의 의견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한 증상일 뿐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행동이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게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물리적 영향을 끼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진정으로 많은 것이 교차하고 서로 연결된 세상의 문턱에 서 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모든 사람을 위한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 (65) 획기적 변화를 만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Image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미술 작품을 '본다'니, 어떻게 하는 걸까? (13) 일반적으로 '색'은 시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얀색이니 갈색이니 파란색이니 하는 이름이 붙은 시점에 개념적이기도 해요. 각각의 색에는 특정한 이미지가 있어서 그걸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그 특징적인 이미지로) 이해하고 있어요. (21) 애초에 나한테는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평범한 거고, '보이는' 상태는 모르니까. 보이지 않아서 뭐가 큰일인지 실은 잘 몰라. (54) 나한테는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평범한 거고 '보이는' 상태는 모르니까, '보이지 않으면 고생한다.'라는 말을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몰랐어. (55) 그 무렵 나는 크게 착각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시라토리 씨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작품을 만질 수 있는 편이 좋을 거라든지 체험형 작품을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라토리 씨 본인은 만질 수 있는지 여부를 티끌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평면이든, 영상 작품이든, 조각이든, 관심이 가면 "좋은데, 보고 싶어."라며 미소 지었다. (69) 시라토리 씨는 스무 살 무렵까지 빛은 보였다고 했다. 어릴 적에 시각을 잃었기 때문에 모양과 색 등 '시각의 기억'(시라토리 씨는 이렇게 부른다)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빛의 이미지만은 뇌리에 강렬히 새겨져 있다고. 그래서 소리와 빛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우리가 보는 것과 시라토리 씨가 그리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일치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76) 보이지 않기 때문에 느끼는 게 있지 않느냐고 자주 듣는데. 그야 보이지 않아서 느끼는 게 있긴 해요. 하지만 보이지 않으니까 느끼는 건, 보이니까 느끼는 것과 나란히 있는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해요. 그 두 가지에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묻고 싶다니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보이는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맹인을 미화하는 게

인종차별과 자본주의

Image
'검다'는 것은 생물학적이거나 문화적인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 개념이다. 그렇지만 '흑인'이라는 단어는 나라마다 쓰임새가 다르다. (19) 인종차별은 오래된 인간 본성이라는 주장이 흔한데, 이는 인종차별을 없앨 수 없다고 넌지시 말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인종차별로 인식하는 현상은 신세계의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아프리카인 노예노동을 체계적으로 사용한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17~18세기에 처음 개발된 것이다. 그리고 신세계 플랜테이션은 농장의 노예 사용은 자본주의가 세계 체제로 처음 등장하는 데서 중심 구실을 했다. (28) 흑인이 자기 피부색을 바꿀 수 없듯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없으므로 차별을 피할 수 없다. 이 특징은 인종에 따른 차별과 종교에 따른 차별의 중요한 차이를 보여준다. 종교를 이유로 박해당하는 사람은 신앙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36) 인종차별 탓에 노예제도가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노예제도의 결과물로서 인종차별이 태어난 것이다. 신세계에서 부자유 노동을 한 사람들은 백인이거나 흑인이거나 황인이었고,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기타 종교의 신자였다. (46) 인종차별은 노예제도와 제국이 낳은 창조물이다. 인종차별은 자본주의가 만인에게 보장하겠노라 약속한 권리를 식민지의 천대받는 사람들에게는 평등하게 보장하지 않은 일을 옹호하기 위해 개발됐다. (60) 마르크스는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주요 조건 세 가지를 알아차렸다고 볼 수 있다. 1) 노동자들 사이의 경제적 경쟁 2) 인종차별 이데올로기가 백인 노동자에게 미치는 호소력 3) 인종에 따른 노동자 분열을 조장하고 유지하려는 자본가계급의 노력 (68) 인종차별이 백인 노동자의 이익에 어긋난다는 사실, 그 이익을 물질적 이익으로 아주 협소하게 보더라도 그렇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인종차별이 자본주의의 유지에 일조하고 그럼으로써 백인 노동자와 흑인 노동자 둘 다에 대한 착취가 계속될

自序 - 이상희

Image
1989년 초판본 전동차(電動車) ― 철갑 캡슐에 실려 호흡곤란으로 숨차하다가 고개를 들어 보면 내려야 할 역(驛)을 또 지나쳐 버렸다······ 낭패 죽음의 기나긴 식도(食道). 지나쳐 버린 역들을 멍멍하게 바라본다. 1989년 11월 이상희 잘 가라 내 청춘/이상희/민음사 20070420 88쪽 7,000원 세상에 나와 이로운 못 하나 박은 것 없다. 못 하나만 잘 박아도 집이 반듯하게 일어나고 하다못해 외투를 걸어두는 단정한 자리가 되는 것을, 나는 간통을 하다가 생을 다 보냈다. 시를 훔치려고 소설을 훔치려고 외람된 기호를 가장했다. 아, 나는 남의 것을, 모든 남의 몫뿐이었던 세상을 살다 간다. 가난한 눈물로 물 그림을 그리던 책상은 긍지처럼 오래 썩어 가게 해 달라. 단 하나, 내 것이었던 두통이여, 이리로 와서 심장이 터지는 소리를 막아 다오. 그리고 떳떳한 사랑을 하던 부럽던 사람들 곁을 떠나는 출발을 지켜봐 다오. 1 그가 앉은 섬에는 낙타가 바늘 속으로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2 나는 나의 시대를 미행할 뿐 눈물 폭죽을 터뜨리며 뛰어가는 광장의 가장자리를 따라 초조한 범인 검은 쇼윈도에 흘낏 제 꼬리를 감출 때 겅중겅중 위태한 징검돌 개울에서 자라는 혹을 밟으며 건너갈 때 갈채에 떠내려가는 회미한 손금 찢어진 얼굴들 있었지만 나는 가까이 또 멀리서 손아귀 단단히 말아진 신문 부시게 터지는 외신 카메라 플래시를 가리느라 가끔 펴 들고는 말 못할 말 없이. 3 연밥 하나 주시겠어요 탈색한 냉이도 반 다발 연밥은 수상하다니까요 이렇게 많은 구멍들을 보세요 절망을 놓쳐 버린 표정이군요 4 달면 뱉고 쓰면 삼킨다 가죽처럼 늘어나 버린 청춘의 무모한 혓바닥이여. 5 눈물은 결국 만리포 파도처럼 죽은 마음의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깔깔한 사랑의 모랫벌을 다시 달리게 했다. 6 오늘은 하지(夏至) 죽음이 가장 긴 날. 7 다시 걸으리 믿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아 지나가는 버스를 세어

시민의 확장

Image
2016년 박근혜 탄핵 사태 때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아동·청소년은 이듬해 대선에서 투표하지 못했다.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선거법 연령을 19세로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은 '보호와 배려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천부인권의 주체로서 '현재의 시민'이다. 즉 '성장하는 시민 becoming citizen'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민 being citizen'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시민이므로 당연히 시민으로 대우해야 한다(23)'.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은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국민의 지위를 인정받지만 참정권은 소외되었다. 우리나라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은 정당에서 활동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64조에서는 최저 근로 연령을 '15세 이상자'로 규정하고, 민법상 혼인은 '18세 이상'이면 가능하다. 선거법 연령만 '19세'로 규정한다. 18세는 혼인과 동시에 성인의 권리와 의무를 갖지만 정치적 참여 영역에서만 권리를 제한받아 형평성에 어긋난다. '독일의 녹색당은 연령 제한이 아예 없다. '당의 기본 가치와 목표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이면 당원이 될 수 있다(78)'. 성인들은 그들의 의사 결정에서 오는 이익의 축소를 우려하기 때문에 '아동·청소년이 가능한 정치적 의사 결정의 영역에 늦게 진입하기를 바란다(54)'. '40세인 사람이 16세인 사람보다 그들을 대표하는 더 좋은 정당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는 없다(124)'. '19세 미만의 국민을 일일이 통제하려는 '유모 국가 nanny state'의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107)'. '세계는 21세에서 18세로, 이제 16세로 시민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125)'. '우리는 재산, 성별, 인종의 장벽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인권의 영역을 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