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온 이후 - 토착민이 쓴 인디언 절멸사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이듬해 함선 17척을 이끌고 신대륙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카리브제도와 아메리카 본토의 부왕 겸 총독"으로 임명받아 에스파뇰라섬(현재의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에 작업장을 차리고 곧바로 토착 타이노족 주민들을 노예화하고 멸종시키는 정책에 착수했습니다. 초기에 800만 명이었던 타이노족은 1496년에는 300만 명, 1500년경에는 10만 명가량 남았습니다. 1542년에는 겨우 200명만 살아남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 이들은 1500만 명에 달했던 카리브해의 다른 토착민들과 함께 멸종되었습니다. 콜럼버스 친구의 아들로 알려진 라스카사스(Bartolomé de las Casas)가 쓴 〈인디언 파괴에 관한 간결한 보고〉에는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이 원주민들에 대한 잔혹한 기록이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누가 한칼에 사람을 두 쪽 내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내장을 꺼낼 수 있느냐를 두고 내기를 걸었다. 그들은 젖먹이 아기의 발을 잡아 엄마 품에서 떼어내어 머리를 바위에 내동댕이쳤다. (...) 그들은 아기와 어머니들을 함께 칼로 찔러 꼬챙이처럼 꿰기도 했다. (28) " 유로아메리카인들의 500년에 걸친 대량 학살과 약탈로 인디언들의 고통은 지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1513년 유럽 탐험대가 플로리다로 상륙하면서 천연두가 대륙에 퍼졌습니다. 1520년부터 1890년까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 사이에 41차례나 천연두와 풍토병이 돌았는데 고의로 퍼뜨렸다는 사례가 남아 있습니다.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더 잔인한 군사작전을 전개하며 영토 확장을 전개했습니다. 1830년대에 미국 동부지방을 청소하여 백인 정착민들의 식민지역으로 만들기 시작하며 체로키족은 절반 이상이 죽었습니다. 1840년대에는 태평양까지 진출하기 시작하며 인디언 절멸논리를 펴나갔습니다. 1890년에는 미국 내에 살아남은 인디언 수가 25만 명에도 못 미치고 사망률이 95%를 웃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