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지성사
- 혁명은 인류가 집단적으로 살면서 구현하는 지진이며, 개인의 성격이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지휘할 수 있지만 혁명을 창조하거나 방해하지는 못한다. (32)
- 모든 혁명은 나름의 원인을 초월하며, '자연스러운' 사물의 경로를 뒤바꾸는 고유한 동학을 따른다. 혁명은 인간의 발명품으로, 불가피한 발생을 드러낸다기보다는 유의미한 별자리의 랜드마크로서 집단적 기억을 건설한다. 혁명이 역사적 진행의 정기적이고 누적적인 시간에 속한다는 믿음은 20세기 좌파 문화의 가장 커다란 오해 중 하나였고, 너무도 자주 진화론의 유산과 진보 이념의 짐을 짊어졌다. (35)
- 혁명은 들숨과 날숨을 쉬는 역사다. 혁명을 근대의 랜드마크이자 역사적 변화의 전형적 순간으로 복원한다고 해서 혁명을 낭만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혁명을 서정적으로 회고하고 우상적으로 재현하기 쉽다고는 해도 비판적 시선으로 그 해방적 특징뿐만 아니라 주저와 모호함, 잘못된 길과 철수를 파악하는 것이 방해받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이 혁명의 여러 모순적 잠재력에 속하며, 혁명의 존재론적 강도에 들어 있다. 사회 세력과 정치적 목표—종교,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농민, 민주주의, 사회주의, 반식민, 반제국주의, 민족, 심지어 파시스트 혁명까지—에 따라 혁명을 나누는 고전적 분류는 흔히 연대기적·정치적 경계를 넘나드는 혁명의 정서적 차원을 파악하고자 하는 역사학자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 연속체의 극적인—대부분 폭력적인— 단절로서 혁명은 강렬하게 체험된다. 인류는 혁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상생활의 정신적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다량의 에너지와 정념, 정동情動과 감정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혁명에 미학적 전회aesthetic turn가 담겨 있거나 그런 전회가 발생한다. (36)
- 파시즘은 혁명의 수사를 구사하긴 했지만 분명 반혁명적 성격을 드러냈다. (38)
- 혁명은 의식적으로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반역이다. (41)
-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은 좋든 나쁘든 간에 혁명이다. 여기서 나는 나쁜 혁명을 버리고 좋은 혁명만 선택하지 않는다. 이런 구분 자체가 대개 까다롭거나 무익하다. 혁명은 언제든 우상화하거나 악마화할 수 있는 고정된 분명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혁명은 형성 과정에서 변화하는 살아 있는 경험이며, 대부분의 경우에 단지 그 동학이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혁명 스스로도 결과를 알지 못한다. 혁명은 도덕적 평가나 순진한 이상화, 비타협적 비난보다는 비판적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것이 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고 그 유산을 전파하는 최선의 길이다. 어느 유명한 문장에서 마르크스는 근대의 혁명은 "과거로 부터 시詩"를 끌어낼 수 없다고 말한 반면, 베냐민은 패배자들을 구원하려는 열망 속에서 혁명의 숨은 동력, 즉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의 비밀 협정"을 탐지했다. 혁명은 두 시간대를 가르는 칼날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래를 발명함으로써 과거를 구원하는 것이다. (42)
- 거의 예외 없이 혁명은 폭력적 분출이다. 폭력은 혁명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으며 혁명의 존재론적 구조 안에 내장돼 있다. 평화적 혁명은 규칙이 아니라 예외이며, 많은 경우에 지연된 폭발의 전조일 뿐이다. (42)
- 과잉, 열정, 광신주의는 모두 혁명에 속하지만―누구도 이런 사실을 진지하게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들은 혁명의 산물이지 원인이 아니다. 혁명은 포고령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혁명 자체가 과잉이나 열정, 광신주의를 낳는다. 물론 광신주의와 이데올로기는 혁명을 수행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없는 혁명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혁명을 일으키려면 혁명의 과잉이나 전체주의, 막다른 길을 언제든 비난할 수 있는 자유롭고 비판적인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제아무리 계몽된 조언자라 할지라도 강압과 폭력을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혁명적 분노는 대개 수십 년이나 수백 년 묵은 억압과 착취, 굴욕과 좌절이 뒤늦게 낳은 결과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쌓인 화약이 갑자기 폭발하는 것이다. (44)
- 혁명은 역사의 분출이다. 혁명의 시기에는 규범론, 법치, 헌법상의 자유, 다원주의, 토론의 윤리, 인권의 철학 등이 모두 이전 시대의 쓸모없는 흔적으로 버려지고 무시되고 땅에 묻힌다. 이는 분명 미덕은 아니지만 하나의 사실이며, 자유를 주장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거나 수립하는 혁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혁명의 비극은 혁명을 해방으로부터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결국에는 새로운 억압적 통치의 교화로 몰고 가는 치명적인 변형에 있다. 해방적 폭력으로부터 강압적 폭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해방의 잠재력을 끈질기게 보전하는 열쇠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방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혁명은 법을 신경 쓰지 않는데, 이는 최선의 방향과 최악의 방향 양쪽 모두로 나아갈 수 있다. (46)
- 우리 시대의 혁명이 자신만의 모델을 발명해야 한다면, 백지 상태에서, 또는 지나간 투쟁의 기억, 정복의 기억만이 아니라 더 많은 패배의 기억을 구현하지 않은 채 발명할 수는 없다. 물론 이 책은 하나의 애도 작업이지만 또한 새로운 싸움을 위한 훈련이기도 하다. 과거를 샅샅이 탐구하는 작업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벽장 안에 숱하게 많은 해골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가 우리에게 내미는 권리 주장을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혁명은 역사의 연속체를 폭파함으로써 과거를 구조한다. 혁명은 스스로 알든 모르든 간에 그 자체 안에 조상들의 경험을 담고 있다. 우리가 혁명의 역사를 숙고해야 하는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53)
- 혁명은 진보를 향한 돌진이다. (70)
- 혁명은 권위와 위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사회·정치 제도를 고안하며, 새로운 삶의 형태를 창조한다. 혁명은 역사적 변화를 순식간에 느닷없이 이루어지는 격변 속에 응축한다. (158)
- 마치 중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떠다니는 꿈을 꾸는 것처럼, 혁명에서는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다. … 혁명 시기에 사람들은 정신으로 충만해져서 정신이 없는 이들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혁명 시기에는 모두가 원래라면 훌륭한 개인들만의 몫이었던 정신으로 채워진다. 모두가 용감해지고 격렬하게 열광하는 동시에 서로를 돌보고 사랑한다. -구스타프 란다우어, 『혁명』(1907) (181)
- 모름지기 혁명은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자신만의 가치 체계를 창조하기를 바라지만, 언제나 앞선 지배의 상징들을 파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상파괴는 혁명과 동일체로서, 혁명과 기억 영역의 물질성과의 이율배반적 관계를 설명해준다. 혁명은 승리하기 위해 기성 질서와 그 제도만이 아니라 그것의 상징과 표상, 때로는 건물과 장소까지 파괴해야 한다. (208)
- 우리는 전통이 "발명 될" 수 있고, 또한 전통이 사건을 후광으로 에워싸면서 사건에 관한 인식을 바꿈으로써 사건 자체를 수정할 수 있음을 안다. 하지만 전통의 지속은 그 대상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19세기와 20세기에 혁명의 전통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계를 바꾸는 것이 환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적 시간의 지평 안에 새겨진 목표임을 입증했다. 충분히 가능한 구체적인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256)
- 혁명가는 길 잃은 사람이다. 그는 자기만의 이해나 대의가 없으며, 감정이나 습관, 재산도 없다. 심지어 이름도 없다. 그 안의 모든 것은 하나의 배타적인 관심, 하나의 사고, 하나의 정념에 흡수된다. 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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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자유의 적에 맞서 벌이는 전쟁이다. -로베스피에르, 「혁명 정부의 원칙에 관하여」(1793)
정부 지지자들만을 위한 자유―그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일개 당의 당원만을 위한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언제나 오로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자유여야 한다. '정의'라는 어떤 광신적인 개념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자유에서 유익하고 건전하고 깨끗한 것은 모두 이런 본질적 특징에 의존하기 때문이며, '자유'가 어떤 특권이 되는 순간 그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러시아 혁명』(1918) (385) - 공산주의는 확립해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그에 맞춰 현실을 조정해야 하는 하나의 이상이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현재 상태를 폐지하는 현실의 운동이라고 부른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1845) (447)
- 혁명은 인간이 자신의 역사를 만드는 순간이다. 그것은 억압받는 이들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 낡은 사회, 정치 질서를 거꾸로 뒤집고 이를 새로운 질서로 대체하는 순간이다. 혁명은 역사의 경로가 잠시 중단되는 것이며, 이 순간 '균일하고 공허한' 시간의 직선성이 폭력적으로 깨지면서 새로운 지평선이 열리고 사회를 새롭게 발명해야 하는 미래로 투사한다. (459)
- 소련의 종언은 새로운 힘들을 해방시키는 대신 20세기 혁명이 역사적으로 패배했다는 인식을 널리 퍼뜨렸다. 역설적으로 현실 사회주의의 난파는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집어삼켰다. 21세기의 좌파는 이전의 모든 좌파와 거리를 두면서 자신을 재발명해야만 한다. (505)
- 새로운 글로벌 좌파는 이런 역사적 경험을 '샅샅이 탐구하지' 않고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리라. 이 폐허의 들판에서 공산주의의 해방적 고갱이를 찾아내는 일은 단순히 추상적이고 지적인 작업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전투가, 어느 순간 갑자기 과거가 다시 나타나고 '기억이 번쩍 빛나게' 밝혀주는 새로운 별자리가 필요하리라. 혁명은 일정을 잡을 수 없으며 언제나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506)
혁명의 지성사Revolution: An Intellectual History, 2021/엔초 트라베르소Enzo Traverso/유강은 역/뿌리와이파리 20231030 604쪽 28,000원
혁명은 미래를 발명함으로써 과거를 구원하는 인간의 발명품으로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반역을 통해 진보를 향해 돌진하는 집단적 행동으로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려는 랜드마크다.
내 맘대로 혁명의 정의을 짜집기했다. 좌파의 생각이 상식이 되는 것이 진보라면 혁명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공조본)는 20250115 10:33 내란 우두머리 굥서결 체포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12·3내란사태의 끝은 정해져 있다. 체포, 파면, 사형. 법칙이다. 법칙은 적어도 인간이 인지하고 관찰하는 범위 내에서는 예외가 없다는 뜻이다. 자기들 처지 또한 어떤 예외도 없음을 아는 오사리잡놈들과 불한당 무리가 청명이 아니라 한식에 죽으려고 기를 쓴다. 자연사가 최대 축복이 되는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