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법칙

나와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느끼게 되는 고통이 나에게 전달되기까지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은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고 같이 울기 시작하는 아이나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 괜히 즐거워지는 식의 감정의 전이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전이를 넘어 공감에 이르기 위해서는 ①상대방도 나와 동일한 인격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고, ②나를 상대방의 처지에 놓으려는 상상력이 필요하며, 마지막으로 ③상대방이 그 상황에서 느끼게 될 고통이 내가 그 처지에 있을 때 느끼게 될 고통과 다르지 않다고 여겨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④나 역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그가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우연의 결과일 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역지사지가 가능해야 우리의 공감은 편협한 치우침을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 처지에 놓였더라면 이런 어려움을 겪겠구나라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면, 공감은 확장된 범위에서 이루어질 뿐 아니라 불편부당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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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발동되고, 연민에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단계는 우리를 그들의 처지에 놓고,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그들이 단지 그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하는 고통을 상상해내는 일이다. 나는 우연히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아남은 자임을 자각하고, 우연히 그곳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이들의 고통을 공감할 때 우리는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편부당성을 갖출 때 우리의 공감은 제도적 토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자리에 쿠르디를 놓든, 강남역에서 살해당한 20대 여성을 놓든, 아니면 구의역에서 생을 마감한 청년을 놓든 마찬가지다. - 최정규, 공감의 법칙…배우고 투쟁하고 노력하라


12·3내란사태가 일어나자 수괴를 닮은 괴물이 너무 많이 나타났다. 공감은커녕 측은지심수오지심도 없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모습이지만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괴물이 분명하다. 굳이 인간이라면 성악설로 태어난 종자라고 단정한다. 상대방도 나와 동일한 인격이라는 공감의 전제가 더 크게 다가왔다. 괴물은 지구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박멸해야 한다.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고, 우연히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아남은 자라는 생각까지는 미처 못했다. 반성한다. 경제학자 최정규 교수의 글이다. 공감의 법칙에 격하게 동감하며 배우고 투쟁하고 노력하려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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